“○○○판사 친인척 손드세요”… 제도 악용에 커지는 사법 불신
특정 재판부 피하려 판사와 연고있는 변호사 선임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서 논란
법원 스스로 회피하도록 악용
소송에서 재판부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놓고 이른바 ‘재판부 쇼핑’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공정한 재판 진행을 위해 마련된 제도인데 담당 판사를 바꾸거나 재판을 지연하기 위한 전략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관련 규정을 보완해 이 같은 논란이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 쇼핑 논란은 주로 사건 당사자가 전관이나 친인척 등 담당 재판부와 연(緣)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할 때 불거진다. 법원 사건배당 예규는 당사자가 재판부 소속 법관과 개인적 연고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 공정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재판장이 소속 법원에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재배당 여부는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 등 배당주관자가 결정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소송에서 양측에 ‘재판부 쇼핑’ 논란이 제기됐다. 노 관장은 항소심 초기인 지난해 1월 김기정 당시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추가 선임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가사3-1부 당시 재판장인 조영철 전 부장판사의 매제가 같은 법무법인 공동 대표인 남영찬 변호사였다. 조 전 부장판사는 법원에 재배당을 요청했고 재판부는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로 변경됐다.
반대로 지난 1월엔 최 회장 측이 첫 변론기일을 이틀 앞두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명을 선임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김시철 부장판사의 조카가 김앤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법정 외 공방을 벌였다. 다만 서울고법은 김앤장 변호사 선임과 관련해 사건을 재배당하지 않았다. 이미 심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점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8호 등이 고려됐다. ‘3·4촌 친족이 단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 불과할 경우 공정성에 의심이 없는 경우에 한해 (재판부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을 재배당받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에서 인정된 665억원보다 대폭 늘었다.
앞서 2016년에는 신학용 전 국민의당 의원이 2심 재판부와 친인척 관계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해당 변호사는 결국 사임했다. 논란이 불거지면 당사자들은 ‘재판부 쇼핑’ 목적의 선임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특정 재판부를 피하기 위해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A재판부에선 안 좋은 결과가, B재판부에선 좋은 결과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될 경우 연고 있는 변호사를 미리 선임하면 A재판부가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며 “법원이 스스로 회피하는 걸 악용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 법원은 회피 사유를 줄이기 위해 같은 로펌 출신 판사끼리 재판부를 구성하는 묘안도 마련했다. 여러 로펌 출신이 한 재판부에 있으면 피해야 하는 사건이 많아지니 같은 로펌 출신을 재판부에 몰아넣는 일종의 고육책을 짠 것이다. 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직접 재판부를 기피 신청하거나 관할이전 신청 등을 통해 재판부 변경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때론 재판 지연으로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1심에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가 최종 기각되기까지 77일간 재판이 중단됐다. 간첩 활동 혐의를 받은 충북동지회 활동가들은 1심 재판 중 5차례 법관 기피 신청을 내 1심에만 2년5개월이 걸렸다.
재판부 변경 시도는 늘어나는 추세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하급심 형사사건의 재판부 제척·기피·회피 건수는 360건이지만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2022년에는 297건이 접수돼 3건이 인용됐고 2021년에는 263건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단순한 소송 지연 목적의 신청이 명백한 경우 법원이 빠르게 기각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는 사례를 구체화해 그 외에는 간이 기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쇼핑’이 꼭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은 2016년 알선수재 혐의 재판 1심에서 고교 동문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부가 재배당됐으나 결국 징역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재판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전관 선호가 만연해진 사회 분위기 등을 꼽았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장, 좌·우배석과 연고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심지어 상고심에 대비해 대법관 출신도 이름만 올려두는 등 마구잡이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이 관행화됐다”며 “재판에 대한 신뢰가 낮으니 당사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꾸 사건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려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판부와 연고 있는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 해당 변호사의 수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됐다. 김제완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노골적으로 연고가 있는 변호사 선임 시 변론을 제한하고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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