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5기' 끝에 日총리 당선된 이시바…한일관계 여파는?(종합)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은 한일 역사 문제에서 '비둘기' 색채를 드러내 온 인물이다. 당내 파벌 정치의 문제점을 앞장서서 비판하는가 하면, 일본이 전쟁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전향적 역사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일 관계 면에서도 추가 갈등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시바, 결선 투표서 대역전..."안심할 수 있는 나라 만들 것"
자민당은 27일 오후 도쿄 당 본부에서 진행된 총재 선거 결선 개표 결과, 이시바 전 간사장이 총 215표를 얻어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194표)을 누르고 제 28대 총재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다 후보인 9명이 출마한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서 상위 2명인 이시바 전 간사장과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 간 결선투표로 이어졌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1차 투표에서 154표를 얻어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의 181표에 뒤졌으나, 결선 투표에서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시바 전 간사장은 '4전 5기' 끝에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날 연설에서 2012년 자민당이 정권을 되찾았을 때의 상황을 언급하며 "자유롭게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민당, 공평공정한 자민당, 겸허한 자민당으로 모두 마음을 굳히고 정권을 되찾았었다. 다시 한 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을 믿고 용기와 진심을 갖고 진실을 말하며 일본을 다시 한번 모두가 웃는 얼굴로 살 수 있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민당 파벌 비자금 스캔들의 책임을 지고 연임을 포기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결단했다"면서 "우리도 일환이 돼 응해가야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 역시 "국민들에게 자민당이 바뀌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총재선거였다"면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실행력, 결단력, 정책력을 갖고 강력한 내각을 만들어 결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결선 투표는 국회의원 368표와 지방 조직 47표를 더해 총 415표로 진행됐다. 1차 투표보다 의원표의 비중이 더 커진 가운데, 세부적으로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의원표 189표, 지방조직표 26표를 얻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은 의원표 173표, 지방조직표 21표를 받았다.
12선 베테랑 정치인...한일 역사문제서 우익과 다른 목소리 내
정치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이시바 전 간사장은 만 29세였던 1986년 돗토리현에서 최연소 중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당 간사장만 두차례 역임하는 등 자민당 내에서도 12선 베테랑 정치인이자 정책통으로 꼽힌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해 방위상 등을 거치며 국방 문제에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 등 안보 분야 공약을 대거 내세웠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재 후보를 꼽을 때면 늘 1,2위에 이름을 올려왔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 당원들의 강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당내 파벌 싸움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08년, 2012년, 2018년, 2020년 등 네 차례나 총재 선거에 도전했으나 상대였던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전 총리에게 모두 고배를 마셨었다.
이로 인해 자민당 내에서는 '쓴소리'를 자처하는 '당 내 야당' 이미지가 구축돼있기도 하다. 아베 정권 초기에는 내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2016년부터는 한 걸음 물러나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꾸준히 표명해왔다. 자민당 내 파벌 정치를 두고 공개적으로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아소 다로 부총재 등과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로도 알려져있다.
이시바 전 총재는 두번째 도전이었던 2012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파벌'의 힘이 강하게 발휘되는 결선 투표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밀리자, 의원들의 지지가 약하다는 단점을 인식해 자체 파벌을 만들기도 했다. 다만 이 파벌은 6년 뒤 해체했다.
아울러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민당 내 우익 성향의 의원들과는 다른 ‘비둘기파’적인 역사인식을 나타내왔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잘 알려져있다. 그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합사 중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아울러 한일 관계가 악화했을 때에도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왔다. 2019년 8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이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독일의 전후 반성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미일, 한미일 동맹 중시할 듯
이시바 체제에서 한일 관계가 추가 악화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시바 전 간사장의 대한 행보는 이번 총재 선거에서 3강 구도를 이룬 '우익'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과 비교해서도 확연히 비둘기적이다.
다만 기본적인 역사적 인식은 자민당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시바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과거 반성'을 두고 전향적 행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 안보 측면에서는 기시다 정권과 마찬가지로 미일,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노선을 이어갈 전망이다. 또한 자위대의 헌법 명기, 방위력 확충 등을 내세워 왔다는 점에서 주변국들과 갈등 소지도 존재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인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고 있다. 신임 총재는 이날 오후 6시 기자회견에 나설 예정이다. 이후 내달 1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기시다 총리 후임으로 지명된다. 같은 날 새 내각도 발표될 전망이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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