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묘한 기류 흐르는 영광군수 재선거…"호남은 민주당" vs "발전 위해 다른 정당"
26일 전남 영광군 영광터미널시장은 장날이어서인지 꽤 북적였다. 사람들은 점심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장사를 준비했다. 한 농약 가게에서는 노인 2명이 담소 중이었다. 기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대화가 '뚝' 끊겼다. 사장으로 보이는 노인은 일을 보기 시작했고, 손님인 노인은 허공을 쳐다봤다. 조심스레 다음 달 16일 열리는 영광군수 재·보궐선거에 관해 묻자 사장인 이기래씨(68·남)는 손사래를 쳤다. "에헤이 기자 양반, 지방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먼." 이 바닥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이해관계도 복잡해 말조심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시골에서는 이 모임 나가면 어떤 후보 친구가 있고, 저 모임 나가면 다른 후보 친구가 있어요. 지금처럼 막상막하일 때 내가 무슨 말을 얹겠어? 그럼 안 되지!"
26일 기준 전남 영광군수 후보로는 민주당 장세일 전 전남도의원과 조국혁신당 장현 전 호남대 교수, 진보당 이석하 영광군지역위원장, 무소속 오기원 난연합회 회장 등이 등록했다. 이너텍시스템즈가 뉴스앤티브이 의뢰로 지난 19~20일 만 18세 이상 남녀 8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영광군수 재·보궐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장세일 후보 39.3%, 장현 후보 32.7%, 이석하 후보 15.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특히 민주당 장세일 후보와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의 대결이 주목된다.
밑바닥에는 묘한 감정이 흘렀다. 장현 후보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탈당한 뒤 조국혁신당 옷을 입었다.
이재명 다녀간 후 바뀌는 흐름…"민주당에 힘 실어야"
그렇다 보니 일부 영광군민은 장현 후보를 '배신자'라고 칭했다. 경쟁에 익숙하지 않은 이 동네를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 영광터미널시장 인근에서 20년째 순대국밥을 팔고 있는 이모씨(여·67)는 장현 후보에 대해 질문하자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민주당 점퍼를 입고 있는 장현 후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옷을 입고 잘하겠다고 말하던 양반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조국혁신당 달고 나오더라고. 민주당 명함 나눠준 걸 우리가 까먹었다고 생각하는가 몰러."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영광군을 다녀간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영광군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영광터미널시장을 방문했다. 그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재·보궐선거)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오면 민주당 지도체제 전체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며 이번 선거의 의미를 대권까지로 확장했다.
영광군민들도 혹시나 장세일 후보의 패배가 이 대표의 대선 패배로 이어질까 우려했다. 영광터미널시장에서 옷을 파는 박성균씨(57·남)는 "그래도 호남은 민주당"이라며 "아무래도 이 대표가 오면 여기 사람들은 좋아한다. 같은 값이어도,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외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도 장세일이 아닌, 이재명을 언급했다. 이미 재·보궐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 돼 있었다.
"양아치 같은 놈"…'고인 물' 민주당에 반감도 보여
"뭐 민주당? 그 XX들, 완전 양아치 같은 놈들." 영광터미널시장과 차량으로 4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굴비골영광시장에서 만난 김모씨(71·남)는 욕설까지 하며 민주당에 강한 반감을 보였다. 굴비골영광시장은 지난 23일 이 대표가 방문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김씨는 민주당이 표만 받아 갔지, 영광군 지역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24년 전 역사를 읊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영광군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낙연 전 총리를 거론했다. "이낙연이 10년 넘게 했지. 그 이후로도 민주당이 했는데 뭐 발전된 게 없어요. 내가 욕을 안 하게 생겼어?"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호남에서 표만 받아 간다는 이런 불만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21일 장현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통해 "특정 정당이라고 무조건 찍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 후보 측 관계자 역시 "양강 구도가 되면서 지역민의 선택 폭이 넓어진 건 사실"이라며 "민주당 자체보다는 민주당을 뒤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바닥에 있다"고 말했다.
연 100만원·120만원 지급 공약…"남은 임기 1년 반, 무슨 의미 있나"
그럼에도 두 후보는 치열하게 싸우지 못하는 애매한 관계다. 워낙 지역이 좁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보여주듯 두 후보 캠프의 선거 사무실도 영광군 옥당로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밥 먹는 식당도 비슷해서 자주 본다고 한다. 장세일 후보 측 관계자는 "선거 끝나면 볼 사람인데 어떻게 너 죽고 나 죽고 싸우겠나. 좁은 곳 선거가 이렇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공약도 닮았다. 장세일 후보는 군민 1인당 연간 100만원, 장현 후보는 1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미 없어요." 이기래씨는 이번 재·보궐선거에 염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순간, 두 후보의 공약이 무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 빚이 얼마인지 알죠? 젊은이들 월급 빼서 늙은 사람 주고 이러면 안 돼요. 1년 반짜리 임기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몰라." 그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영광군의 재정자립도는 11.7%로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63위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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