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구름 악몽 떠올라…"아무도 원치 않는 폭탄" 실은 배에 영국 '초긴장'
질산암모늄 2만여t 실은 화물용 선박
레바논 베이루트 참사 당시 4000명 피해
4년 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거대한 폭발 참사를 일으킨 '질산암모늄'을 가득 실은 선박이 유럽 여러 항구에서 거부당했다가 영국 해협을 통과할 예정이다. 이 배가 실은 질산암모늄 규모는 베이루트 폭발 당시의 7배에 달한다.
BBC는 26일(현지시간) 영국 해안 경비대 선박 추적 데이터 자료를 인용, 이날 오전 잉글랜드 켄트 해안 부근에 질산암모늄 약 2만t을 실은 선박이 정박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배는 몰타에 본적을 둔 법인 '루비 엔터프라이즈'가 소유했으며, 지난 7월 러시아 북부 칸달락샤 항구에서 출발해 현재는 영국 해안가에서 정박한 상태다. 통상 유럽의 배는 영국 남부와 프랑스 북부 사이에 있는 좁은 물길인 '영국 해협'을 통과해 세계를 항해하는데, 이때 영국 해협을 떠나려면 당국에 허가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선박이 러시아 항구를 떠난 직후 폭풍을 만나 잠시 좌초됐다는 보고가 나왔다는 데 있다. 이후 노르웨이의 조사팀이 출동해 배의 정비 상태를 확인한 결과, 선체와 프로펠러, 방향타 등에 손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선박 소유주인 루비 측은 여전히 "배가 항해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배는 적절한 수리 및 연료 보급을 받기 위해 다른 유럽 항구에 들르려 했지만,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항은 입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항만 당국 최고 경영자 측은 BBC에 선박의 입항을 거부한 이유를 "화물 때문"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데일리메일' 등 일부 영국 매체들은 해당 선박을 두고 "아무도 원치 않는 '떠다니는 폭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선박이 싣고 있는 질산암모늄은 주로 비료 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다. 실온에선 하얀색의 작은 알갱이 형태 고체인데, 특정 물질과 반응을 일으킬 경우 대형 폭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대표적인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는 2020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참사다. 당시 2750t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하면서 마치 '원자 폭탄'과 같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으며, 최소 100명이 사망하고 4000여명이 상처를 입었다. 이 사고는 항구 창고에 보관돼 있던 질산암모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반응을 일으키며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박이 실은 질산암모늄의 양은 베이루트 참사 당시 터진 양의 무려 7배에 해당하는 2만t에 이른다. 이 때문에 유럽 및 영국 해안 경비 당국은 물론, 일부 시민들도 우려스러운 눈초리로 선박의 항해 경로를 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런던대 화학과 소속 안드레아 셀라 교수는 "(일부 유럽 항구의) 신중함은 이해하지만, 베이루트 사고와 같은 (폭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고 BBC에 전했다. 다만 셀라 교수는 질산암모늄이 직접적으로 열을 전달할 선상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폭발 위험은 낮다면서도 "배를 어떻게 수리할지가 관건이다. 용접이 필요하다면 잠재적으로 화재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영국 해안 경비대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배를 실시간 추적 중이다. 경비대 측은 BBC에 "현재 (선박은) 영국 영해 밖에 안전하게 정박해 있으며, 해협을 통과하기 전 해상에서 연료를 보급할 조건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또 경비대는 바다에 머무른 배가 해상 연료 보급을 받는 건 일반적인 관행이며, 안전을 위해 온화한 날씨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일각에선 폭발 위험보다 해양 환경 오염 가능성을 더 우려하기도 한다. 국제 무역 헌장 연구소의 마르코 포르지오네 사무국장은 매체에 "질산암모늄이 선박 밖으로 새어 나와 바다를 오염하기라도 했다면 잠재적 피해는 엄청날 것"이라며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선박은 항해 경로를 바꿔 오염 물질이 더는 이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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