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국교정상화 후… 대만은 반도체 전문가부터 찾았다

맹경환 2024. 9. 2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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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중국인 이야기 10
김명호 지음
한길사, 572쪽, 2만2000원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는 1000여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군인인 린뱌오와 대만 총통을 지낸 장징궈를 꼽았다. 2차 국공합작 시절인 1942년 10월 7일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국민당 장제스를 만나기 위해 충칭에 도착한 린뱌오(가운데)가 중공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린뱌오 바로 오른쪽이 당시 남방국 서기인 저우언라이다. 김명호 제공


김명호 전 성공회대 교수가 쓴 ‘중국인 이야기’의 마지막 10권째 책이 나왔다. 2012년 1권이 나오고 12년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10권의 전반부는 1979년 1월 1일을 기해 미국과 중국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전과 후 20여년간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속도감 있는 영화나 소설을 보는 듯하다.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정사(正史)로 일컬어지는 역사서에는 보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미·중 국교 정상화와 함께 미국의 대만 단교 선언을 접한 당시 대만 총통 장징궈의 반응이다. 장징궈는 국민에게 공식 성명을 발표한 뒤 먼저 행정원장에게 지시한다.


“덩샤오핑은 교육과 과학에 관심이 많다. 미국과 수교 후 미국 유학을 개방하고, 화교 과학자 영입에 광분할 것이 분명하다. 큰 부자 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리는 시절은 끝났다. 수천만의 살림을 책임질 반도체 전문가를 미국에서 물색하라.” 행정원장 쑨윈치안은 지시를 받들어 장중머우를 낙점해 6년간 공을 들였다. 드디어 1985년 장중머우는 대만으로 이주했고, 2년 뒤 대만을 먹여 살리고 있는 반도체 회사 타이지뎬(TSMC)을 설립했다. 저자는 장징궈를 “현실을 인정하고 인재를 존중하는 지도자”로 평했다.

이야기는 잠시 장징궈의 사생활로 흐른다. 시간도 소련 유학을 마치고 소련인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온 1935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징궈는 소련 부인을 두고 젊고 예쁜 중국인 과부 장야뤄와 3년간 동거하며 쌍둥이 아들을 뒀다. 두 아들이 태어나고 6개월 뒤 장야뤄는 의문 속에 죽고, 두 아들은 버려졌다. 두 아들은 대만에서 각각 외교부장과 명문대 총장이 된다. 이야기는 다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이 벌어졌던 만주로 흘러가고 그곳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도 있고, 정치가는 물론 예술인도 있다. 중국인 이야기는 공자의 77대 직계 종손 쿵더청으로 마무리된다.

중국인 이야기 전 10권에는 10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1권에 등장했던 인물이 다시 10권에 나오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다르다. 시간순으로 나열되지 않고 종횡무진이다. 어찌 보면 산만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산만함’이야말로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인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산만하다”면서 “저 또한 산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쿵더청의 이야기로 마무리한 특별한 의도도 없다고 했다.

소련 체류 시절 트로츠키파로 몰려 우랄 지역 중장비 기계창으로 쫓겨난 장징궈(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장징궈 왼쪽 지팡이를 짚은 여인은 장징궈의 소련인 부인 장팡량으로 두 사람은 1935년 3월 15일 결혼했다. 김명호 제공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저자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군인인 린뱌오와 대만의 장징궈를 꼽았다. 그는 “린뱌오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생 무기를 쓴 적이 없었지만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군인을 꼽으라면 그를 꼽겠다”고 했고, “장징궈는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깜짝쇼나 연출을 하지 않아서 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중국에서 ‘인민의 총리’로 칭송되는 저우언라이는 “가장 교활한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중국인 이야기가 12년 진행되는 동안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한·중, 미·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저자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중국에 대해 잘 모른다. 중국을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중국을 알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미국의 상황도 소개했다. 그는 “미국 학자들은 중국과 중국인의 정수가 담긴 사마천의 ‘사기’와 두보 시집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가령 사기 중 본문 10쪽 안팎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주석은 300쪽이나 된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40여년간 중국, 대만, 홍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과 자료를 모았다. 지금도 중국과 대만, 홍콩 등에서 잡지 열두 가지를 정기 구독한다고 한다. 그 방대한 자료들은 또 다른 책으로 나올 것 같다. 그는 “중국의 법조인과 재판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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