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번아웃’은 훈장이야!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지음, 김지연 옮김
RHK, 348쪽, 1만9800원
직장 내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탈진 상태를 가리키는 ‘번아웃(burn out)’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미국이었다. 원래 ‘연료 소진’이라는 뜻을 가진 은유적 표현으로 처음에는 사회복지사나 교사, 간호사 등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군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모든 직종, 세계 어느 곳에서나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사실 번아웃을 비롯한 탈진으로 인한 고통은 현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두려움과 원인 없는 슬픔으로 인한 무기력 증상을 ‘멜랑콜리아’로 진단했고, 중세에는 게으름, 무기력 등을 의미하는 ‘아세디아’가 신앙과 의지가 부족해 생기는 죄로 취급됐다. 산업 혁명 이후에는 ‘신경 쇠약’이 유행처럼 번졌고 핵심 증상은 탈진 상태였다. 영국 켄트대 문화사 교수인 저자가 “탈진 상태는 인류가 태초부터 지녔던 숙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탈진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것이라면 그 해결 방법도 꾸준히 쌓여 왔을 것이다. 저자는 최신 심리학적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문학, 과학, 역사, 철학 등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지혜를 구한다. 책은 받아들임(Acceptance)에서 시작해 시대정신(Zeitgeist)까지 영어 알파벳 순으로 26개의 글로 채워졌다. 각각의 장들은 비교적 짧은 글들이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저자의 배려다.
지친 사람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출발점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다음 현재 상황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남은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미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쾌하게 구분했다. “의견, 동기, 욕망, 혐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면에 신체, 재산, 명예, 직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장점은 물론이고 단점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을 강조한다. 업무 성과나 타인의 평가에 관계없이 스스로를 굳건하게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됐어야 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은 일단 내려놓아야 한다. 저자는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은 우리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면서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일을 예방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비판하는 부정적인 목소리에 시달린다. 바로 ‘내면의 비평가(Inner critic)’다. 그는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르고 잘한 일이라도 깎아내리려고 든다. 결국 수치심과 죄책감, 초라함과 비참함으로 이끈다. 내면의 비평가를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자신과의 끝없는 심리적 전쟁에 소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무시하는 게 쉽지는 않다.
심리학자 타라 브랙은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개인의 부족함을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무가치함의 미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라 온 아이들은 부모를 탓하기보다는 자기 자신 때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버스 승객’ 비유를 통해 내면의 비평가의 목소리를 무시하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행길을 함께하는 버스의 운전기사라고 상상해 보라. 뒷좌석에는 조용히 운전기사를 신뢰하고 맡기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잘못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승객도 있다. 목소리 큰 승객은 방향을 돌리려고 하고 때로는 위험한 길로 들어서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내쫓으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의 말을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더 현명하고 친절한 다른 승객의 말에 귀 기울이면 된다“면서 “내면의 비평가가 무슨 말을 하든 의미 없는 소음으로 치부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저자는 인생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영혼이 시들어 갈 때 취미를 갖기를 권한다. 다만 “취미 활동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그 ‘목적 없음’ 덕분에 취미는 탈진 상태라는 황량한 불모지에서 우리를 구출해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취미의 영역에서도 완벽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탁자를 만들 때 팔아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만드는 자체를 즐겨야 한다”면서 “취미는 성취와 경쟁이라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번아웃에 빠진 현대인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빠뜨리지 않는다. 번아웃은 일종의 ‘영웅적 훈장’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번아웃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 혹은 그 이상을 바쳐 일했다는 뜻”이라며 “번아웃 느끼는 사람은 책임감이 지나쳐 감당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 세·줄·평 ★ ★ ★
·영혼이 지쳤다고 느껴질 때 펼쳐 보길
·하루 한 챕터씩만 천천히 음미하길
·스스로를 존중하길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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