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우리 동네 바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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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천변에 징검다리가 있다.
맞은편에 우체국이 있어서, 새 책을 낼 때마다 징검다리를 건너 우편물을 부치곤 했다.
둘이 불광천 징검다리를 건너다 '애기'가 그만 물에 빠져버린다.
시인은 이를 '징검다리 애기 표정'이라고 부르며 남편에게 "이런 게 자랑이 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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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천변에 징검다리가 있다. 빨랫돌처럼 판판한 돌이 서른 개 남짓. 맞은편에 우체국이 있어서, 새 책을 낼 때마다 징검다리를 건너 우편물을 부치곤 했다. 햇빛 좋은 날은 엄지만 한 목을 쭉 빼고 등을 말리는 붉은귀거북을, 비 오는 날에는 오죽처럼 가느다란 외다리로 선 백로를 보기도 했다. 예사로이 오가는 산책길이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채롭게 채색되는 계절의 기척이 반갑다. 마치 은박을 동전으로 긁어 살살 벗겨내듯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나기도 한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오리를 보며 새삼 실감한다. 내가 얼마나 이 풍경을 사랑하는지.
김은지 시인의 산문집 ‘우리 동네 바이브’(안온북스)를 읽다보면 일상을 사랑스러운 조각으로 빼곡히 채워나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시인의 보폭에 맞게 사뿐사뿐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은 반려견 ‘애기’와 산책하러 나갔던 일화로 시작된다. 둘이 불광천 징검다리를 건너다 ‘애기’가 그만 물에 빠져버린다. ‘애기’가 물에 빠졌을 때의 표정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시인은 웃음을 터트린다. 시인은 이를 ‘징검다리 애기 표정’이라고 부르며 남편에게 “이런 게 자랑이 된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귀엽고 뿌듯한 자랑거리인가. 그 표정은 세상에서 단 한 명, 시인만이 아는 것이다. 징검돌을 함께 건넜던 ‘애기’는 이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없다.
공교롭게도 그날, 나도 작은 기쁨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산책로에 처음 보는 흰 꽃이 피어 있었다. 나팔꽃과 비슷했는데 크기가 작았다. 그 자리에서 검색해 보니 ‘애기 나팔꽃’이었다. 시인의 반려견 이름도 ‘애기’인데! 이름이 같아서 슬쩍 웃음이 났다. 사나운 세상에도 이렇게 순하고 맑은 생명이 기쁨을 준다고. 하늘은 강아지나 꽃처럼 무구하고 깨끗한 선물을 지상에 놓아두는가 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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