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도자의 결단

최승욱 2024. 9. 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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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연수 중 경험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경선 랠리가 시작되기 전부터 '바이든 대 트럼프' 구도로 굳어져 있었다.

민주당 안팎에서 후보직 사퇴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 달 가까이 버티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거리에서 만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선을 이미 이긴 것처럼 행복해했지만, 역시나 일방적인 구도에 흥미를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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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욱 정치부 차장


지난 6월 연수 중 경험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경선 랠리가 시작되기 전부터 ‘바이든 대 트럼프’ 구도로 굳어져 있었다. 그나마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끝까지 경쟁하겠다던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가 ‘슈퍼 화요일’(3월 5일) 직후 사퇴하면서 김이란 김은 다 빠져버렸다.

민주당 지지자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도 내심 재밌는 ‘볼거리’를 기대했던 TV 토론은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완벽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민주당 안팎에서 후보직 사퇴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 달 가까이 버티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거리에서 만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선을 이미 이긴 것처럼 행복해했지만, 역시나 일방적인 구도에 흥미를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활기 없이 표류하던 미 정가에 한순간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7월 21일 오후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면서 정가는 물론 시골 마을 주유소에서도 미국이 출렁이며 활력을 되찾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대선이 아직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바이든의 결단’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이로 인해 변화가 생기고 곳곳에서 활력을 되찾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무기력한 상태로 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늘 민생을 가장 먼저 챙긴다고 하지만 여의도와 삼각지는 늘 갈등에 휩싸여 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현실에 매일 무뎌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역대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긴장과 갈등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지만 지금처럼 여당 대표가 현직 대통령에게 ‘독대’ 한번 하자고 애원하는 모습은 매우 낯설다. 2015년 4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정면충돌하고 사실상 갈라섰을 때도 지금처럼 싸우지는 않았다. ‘누가 따로 만나자고 했는데, 누가 거절했다더라’ ‘그걸 왜 다른 사람 통해 흘리나, 불쾌하다’는 식의 갈등이 생중계되지는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끼리 서로 오해와 화해를 반복하는 걸 전 국민이 지켜보는 듯하다. ‘쌍특검법’(김건희·채상병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192석의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야당은 명분을 ‘무기’로 연일 특검법을 처리해서 국회 밖으로 내보내고, 이를 받아든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이라는 ‘절대반지’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 뭔가 계속 일이 벌어지는데, 결국 되는 일은 없는 상황이 몇 달째 반복되고 있으니 이걸 바라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겹겠나 싶다.

이제 결단은 용산의 몫이다. 여당 대표와의 회동이, 꺼낼 주제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국정’을 논하지 않는다면 누가 집권세력에 신뢰를 가지겠나. 기왕이면 여당 대표뿐 아니라 야당 지도부와도 적극적인 소통을 하면 더 큰 생기가 돌 것 같다.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군검찰 수사만으로는 국민적 의혹을 씻기엔 부족하다는 것 아닌가. 지난 23~25일 실시된 NBS 조사(전국 성인 1005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에서 ‘김건희 특검법’ 찬성 여론이 65%였다. 야당이 발의한 특검법을 그대로 수용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용을 전제로 야당과 논의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 시점이 됐다. 야당이 192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추석 직전 대통령 지지율이 어디까지 내려갔는지를 가벼이 여기면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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