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댓글부대의 교훈
국정원·기무사·경찰 가세해
전략적으로 여론 조작 시도
이제는 신천지가 교회 비판하듯
왜곡된 세계관 심는 지경까지
AI시대, 조직된 소수 경계해야
넷플릭스에서 영화 댓글부대를 보다 생각난 일이 있다.
2007년 이맘때,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사무실을 방문했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의 사이버 대응팀 사무실이었다. 신선한 이미지로 막 주목받기 시작했던 정치인이 창당도 하기 전에 온라인 활동부터 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정치 공방을 벌이는 사람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이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여론 대응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시작됐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사이버 관리팀은 이미 50여명 수준이었고, 노사모 창사랑 같은 팬클럽은 수만 명 규모였다. 홈페이지나 팬카페를 운영하고 희망저금통 같은 후원금 모금, 지역 경선 참여 등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탄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론 조성을 넘어 조작도 시도했다. 2002년 신문 기사를 보면 이미 인터넷 투표에 몰려가 결과를 바꾸거나 온라인 논객인 척 활동하며 논리를 전파하는 활동을 했다. 조직적이었다. 논리와 전략을 제공하는 기획팀, 직접 온라인에 맞춤한 글을 쓰는 제작팀, 글을 퍼 나르고 흐름을 이끄는 확산팀이 역할을 분담했다. 논리보다는 쏙쏙 와닿는 표현이 중요했다. ‘말세에 이씨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거나 ‘노무현은 왠지 불안하다’ 같은 말로 온라인 여론을 공략했다.
2012년 대선의 댓글부대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 기무사령부, 경찰청까지 총동원돼 여론 조작을 일삼았다. 매일 아침 6시에 군인들이 모여 군사 작전 차원에서 여론 작업을 전개해 댓글부대라 불렸다.
이 사건이 남긴 건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과 영화만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언쟁이 벌어지면 곧잘 상대를 ‘알바’로 의심하는 불신이 시민 사이에 번졌다. 정보기관은 정치적 논란이 무서워 사이버 정보심리전이나 온라인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뉴스 댓글 다수가 중국에서 쓰여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고, 가짜뉴스와 딥페이크를 이용한 사기도 횡행한다. 북한이나 제3국의 여론 조작과 사기 행각을 추적하고 대응하는 일은 어디 소관인지 모르겠다.
소설 댓글부대에도 잘 묘사돼 있지만, 여론 조작은 단순히 댓글과 논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정의감과 윤리관, 다수에 속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해 왜곡된 세계관을 심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신사참배 자료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맞춤한 영상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교회가 어떻게 신사참배를 하고 일제에 협력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한국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타락했다”고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숙연해졌다가, 그 채널의 정체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천지였다. 기성 교회를 비판하면서 자신을 정의의 자리에 올려놓는 논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똑같은 논리로 교회의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왔다. 그런 글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조하는 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참다못해 나도 댓글을 달았다.
“개신교인으로서 부끄러운 사실이고, 교회가 늘 반성문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이고 유교 불교 천주교 성공회까지 신사참배에 동참할 때도 개신교회는 저항했습니다. 특히 한국교회 주류인 장로교회는 교회 안까지 총칼을 들고 와 협박할 때까지 버티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런 점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민망해서 그렇습니다. 신사참배는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고 종교인으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니까요. 하지만 이를 이유로 손가락질하기보다 힘없고 나약했던 우리의 과거를 슬퍼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댓글부대는 활동 중이다. 국내 어느 대기업 안에는 챗GPT를 학습시키는 팀이 따로 있다고 한다. 자기네 회사와 제품, 총수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을 반복해서 주입하는 일을 한단다. 챗GPT의 허술한 보안을 역이용하는 셈이다. 생성형 AI를 길들이려는 시도가 이것뿐일까?
댓글부대의 교훈은 명확하다. 온라인에선 조직된 소수가 다수를 속이기가 너무 쉽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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