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도처에 국민 생명 노리는 ‘교통안전 사각지대’
도시 내부의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낮춘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지난 2021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안전을 강화하는 일시정지 확대 정책, 학교와 아파트 단지 등 도로 외 구역 안전 컨설팅을 지원하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이처럼 교통안전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는 정부 정책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일이다.
다만 아직도 교통안전 정책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있다. 지난 7월 퇴근길 시민 9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서울시청역 역주행 교통 참사도 그런 사각지대와 관련이 있다.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급발진과 고령자 운전이 사고 원인인지는 불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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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에 9명 희생된 시청역 참사
안전표지 부족, 운전자 혼란 초래
보강 볼라드로 보행자 보호해야
」
경찰 조사에 따르면 조선호텔 진출입로를 나온 사고 차량 운전자는 일방통행인 세종대로18길을 역방향으로 진입한 뒤 과속으로 내달리다가 사고를 냈다. 그런데 조선호텔 진출입로와 소공로가 만나는 교차로는 양방 통행, 일방통행, 예각 모퉁이 등이 섞여 있다. 5개 도로가 만나는 복잡한 구조다. 호텔에 진입한 차량은 나갈 때 우회전만 가능하다.
문제의 교차로는 접속부의 차도 폭이 10m가 넘고 적절한 안전표지가 없어 운전자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었다. 사고 당시 유일한 안전표지는 좌회전 금지 노면 표시였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야간에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직진 후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한 것으로 보인다.
우회전만 가능하도록 차량을 안내하는 교통섬, 직진·좌회전 금지 표지판, 노면 표시 병행 설치를 갖췄다면 역주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이후 뒤늦게 우회전 주행 안내선과 직진·좌회전 금지 표지판이 설치된 사실을 보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가 안전시설 설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차로가 적절한 교통안전시설을 갖추지 못했던 이유는 도로 구역과 도로 외 구역 경계의 모호한 위치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호텔 진출입로는 도로관리청이 항시 안전 사항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도로 구역의 경계 밖에 있다. 도로 관할 구역 제도의 사각지대다. 상당한 교통량이 발생하는 도로 외 구역으로부터 진출입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는 교통안전 사각지대로 간주하고 관할 도로관리청의 철저한 안전 조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 시청역 사고 사례와 같이 운전자의 착각과 혼선을 일으키기 쉬운 복잡한 교차로라면 반드시 적정한 안전시설이 설치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청역 사고에서 확인된 또 다른 교통안전 사각지대는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다.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는 제한속도가 낮고 보행자가 많은 도로에 설치한다. 보행자가 차도로 나오는 것을 막는 목적이므로 강한 충격에 견디지는 못한다. 이번 사고 차량이 방호 울타리를 부수고 큰 인명피해를 낸 이유 중 하나다.
서울시가 세종대로18길 같은 보행자 밀집 지역에 가드레일(차량용 방호 울타리)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드레일은 운영 속도가 높은 도로의 중앙분리대·사면·교량 등에 주로 설치하는 시설이라 시각적으로 과속을 유도한다. 또한 보행자의 상가 접근성과 도시미관을 해쳐 도시 경제 활성화에 방해가 된다. 세계적 명품 도시에서 가드레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차량 돌진으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려면 가드레일보다 미국이나 유럽 도시에서 차량과 보행자를 분리하는 시설로 사용하는 금속 재질의 강화된 볼라드 설치가 바람직하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5명으로 낮아졌다. 일견 교통안전 선진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유럽과 남미 개도국들이 가입한 후 현재의 OECD 회원국 평균은 선진국 수준의 지표가 아니다. 한국과 소득 수준이 유사한 국가들과 교통안전 수준을 비교해야 한다.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일본·영국의 인구 10만 명당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명 선이다. 즉, 한국의 경제 위상에 걸맞는 도로 교통안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도로에서 희생되는 국민 생명을 더 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교통안전 정책의 사각지대를 꾸준히 찾아내고 조속히 개선해야 마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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