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의 쇼미더컬처] 흑수저, 백수저, 그리고 자영업자
“넷플릭스 방영 후 매출이 세 배 늘었죠. 특히 젊은 분이 많이 찾아오셔서 응원해 주시고…. 새로운 활력을 얻어 기쁩니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중식 여왕’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는 정지선 셰프의 말이다. 지난 17일 공개 직후부터 OTT 시청 국내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를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 덕에 그가 운영하는 중식당 ‘티엔미미’는 요즘 예약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소셜미디어에는 “셀럽의 셰프(임희원)가 만든 베지테리언(채식성) 사시미 먹어보고 싶다” 등의 후기가 쏟아진다. 출연 셰프 식당들을 한눈에 목록화한 지도 서비스(네이버)도 등장했다.
애초 흑수저 80명과 백수저 20명을 갈라놓고 ‘요리 계급전쟁’이라는 부제를 붙였을 때만 해도 스타 셰프를 실력으로 압도하는 언더독의 반란이 관전 포인트로 보였다. 한데,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오직 맛으로만 심사하겠다”고 선언하고 흑-백 일대일 대결에서 초유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등장하면서 결과보다 과정이 흥미진진해졌다. 미쉐린(미슐랭) 3스타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관능적으로 쏟아내는 촌철살인 심사평은 이미 어록이 됐다. 소박한 탕그릇 하나로 승리한 한식 장인이 보여줬듯 요리의 본질은 인스타그램용 ‘인증샷’이 아니라 맛에 있다!
그러나 이 명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요리의 본질과 요식업의 본질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미식(美食)만으로 손님을 끌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안성재 셰프의 ‘모수’가 왜 문 닫았겠는가(다른 투자를 받아 재개업한다는 소문도 있다). 오너 셰프는 다른 말로 자영업자다. 넷플릭스가 작심하고 마련한 초호화 주방 세트에 출연자들이 진심으로 환호하고 감격하는 걸 보라. 장비 걱정, 재료 걱정, 무엇보다 판매루트 걱정 없이 마음껏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그만큼 ‘환상’이란 얘기다.
“결국 요리는 돈 벌려고 하는 거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딸린 종업원들을 먹여살려야 한다.” 7화 ‘생선의 방’ 대결에서 놀라운 칼질로 좌중을 휘어잡은 ‘백수저’ 안유성 셰프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정부 인증 ‘명장’ 타이틀까지 딴 그가 후배들과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요즘 외식업계가 어렵다. 다른 데 가면 심사위원 하는 여경래·최현석 셰프가 출전한 것도 전체적으로 붐업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 그는 도전하는 흑수저들이 이참에 주목받는 걸 제 일처럼 기뻐하면서 “떨어지든, 올라가든 다 귀한 경험이 된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광주 가매일식 등도 방문율이 폭증했다. “가게 식구들에게 말했다. 방송 타고 얻은 인기는 길어야 3개월이다. 손님이 계속 오게 하려면 한결같이 잘해야 한다.” 그 말에 실감했다. 흑수저든, 백수저든 자영업자의 진짜 생존 분투는 흑백요리사 이면에 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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