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사기 친 野, 눈뜨고 코 베인 與…'최악' 치달은 국회 [정국 기상대]
국민의힘 "사기꾼들" vs 민주당 "자율투푠데 뭐가 문제"
尹 거부권 '노봉법·방송법·25만원법'도 본회의 최종 부결
대통령실 "강행처리 멈춰달라"…野 추가 강행 입장 견지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거세게 충돌했다. 양측이 '사전 합의'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 선출 표결 결과 선(先) 투표한 야당 추천 인사는 통과된 반면, 후(後) 투표한 여당 추천 인사는 부결되면서다.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인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서 "사기꾼"이라고 거세게 성토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자율투표"라며 반발했다.
야당이 밀어붙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25만원 살포법' '노란봉투법' '방송 4법' 등 여야 정쟁 법안들의 재표결도 최종 부결됐다. 야당은 자신들이 요구하던 법안이 폐기되자 본회의장에서 임의 퇴장해 규탄대회를 열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이 한 편의 '막장 드라마' 세트장이 된 것이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본회의 시작부터 양측 추천 국가인권위원 표결 결과를 놓고 극한 대치를 벌였다. 통상 국회 추천 몫 인사는 여야 합의를 거쳐 본회의 안건으로 올리는 게 관례인 만큼, 먼저 투표한 민주당 추천 인사 이숙진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재석 298명에 찬성 281표·반대 14표·기권 3표로 가결됐다. 108석 국민의힘 의석수를 감안했을 때, 대다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투표한 국민의힘 추천 인사인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해선 찬성 119표·반대 173표·기권 6표로 부결됐다. △민주당 의석수 170석 △조국혁신당 12석 △진보당 3석 △기본소득당 1석 △사회민주당 1석 총 187명의 야당 국회의원 중 14명을 제외한 전원이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부결표가 민주당 전체 의석수보다 많은 것이다.
이같은 결과에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 "왜 합의를 깨냐" "이런 야바위 사기꾼들"이라며 정회를 요구했다. 투표 결과에 화들짝 놀란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석으로 뛰쳐 나와 "인사에 관해서는 각자 추천한 사람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우원식 의장에 직접 항의했다.
뒤따라 나온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인권위원 찬반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았고, '부적절한 인사'라는 한 의원(서미화 민주당 의원)의 의총 발언을 듣고 개별 의원들이 자율투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미화 의원은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인권위의 실태에 문제를 제기한 뒤, "도저히 한석훈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은 지난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 이탈표가 대거 등장하며 최종 가결되자 개딸의 요구에 따라 당내 '반란표' 색출에 나선 바 있다. 당시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진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은 이날 박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국회법상 국회의원은 자율투표를 할 권리가 있는데, 반란표 색출은 심각한 국회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극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에 우 의장은 결국 15분간의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30여분 뒤 속개된 본회의에서도 여야 간 파열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연단에 오른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얼마 전 경찰청에서 우리나라 사기 범죄가 점점 더 창궐해서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는데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내가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개탄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에 누가 사기를 당했냐. 국민이다"라며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 온 국민이 지금 분노하고 있고 이런 정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박 원내수석의 발언 도중 국민의힘 의원들은 연신 "사기꾼"을 연호했고, 박 원내수석은 입가에 미소를 띄고선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하세요"라며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석훈 국가인권위원 선출안이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부결된 것과 관련 "역대 어느 국회에서도 없었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여야 간의 대화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비판에 민주당은 '인식 수준이 참담하다'고 비난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실이 국회의원들이 소신에 따라 투표한 결과를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며 "오만의 극치이고 역시 반헌법적 인식이다. 이런 정권이야말로 있었던 적도, 앞으로 또 나올 일도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야당의 '합의 파기'로 불거진 한바탕 대치 후에도 여야는 민주당이 주도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정쟁 법안들(노란봉투법·방송4법·25만원 민생지원법)의 재표결 결과를 두고 또다시 대치하기 시작했다. 해당 법안들은 이날 재표결 결과 모두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폐기됐다.
최종 폐기된 법안들의 재투표 결과를 세부적으로 보면, 방송 4법의 내용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총 투표수 299표 중 찬성 189표·반대 108표·무효 2표 △방송법 개정안 찬 189표·반 107표·무 3표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은 찬 188표·반 109표·기권 1표·무 1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찬 188표·반 108표·무 3표로 부결됐다.
이어 노란봉투법은 △찬 183표·반 113표·기 1표·무 2표 △25만원 지원금법은 찬 184표·반 111표·무 4표로 부결됐다. 해당 법안들은 앞서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강행 통과된 법안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야 합의없는 법안은 수용할 수 없다' '불법파업 조장 우려가 있다'(노란봉투법) '공익성을 훼손'(방송4법) '재정건전성 악화'(25만원 살포법) 등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같은 재표결 결과에 야당은 국회의장의 정회 선포가 없었는데도 '규탄대회'를 명분으로 본회의장을 임의 퇴장했다. 박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 5당은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열린 긴급 규탄대회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용산의 거수기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냐"라고 했다. 반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모인 국민의힘은 같은 시각 규탄대회를 열고 "양심 없는 합의파기, 사기 정치를 규탄한다"고 맞불을 놨다.
거부권 법안 재표결 결과 야당 내 이탈표가 발생했다는 여당의 분석도 나왔다.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재명 대표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은 7표, 노란봉투법은 8표의 야권발(發) 이탈표가 생겨났다"며 "민주당이 뒤늦게 규탄대회를 열고 결집해보려 하지만, 늘어난 이탈표를 감출 수는 없다. 국회 정상화의 첫걸음은 민주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폐기된 법안들은 여야의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법안"이라며 "야당은 반복되는 위헌·위법적인 법안 강행 처리를 이제 중단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현금살포법 등 일부 재의안 표결에서, 반대가 국민의힘 재적 의원 수를 넘었다. 야당에서도 이탈표가 나왔다. 일부 야당 의원들도 이 위헌적 악법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우려를 표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위한 '쳇바퀴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법안 처리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재반박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한 방송 4법·민생회복지원법·노란봉투법은 재의결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며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오만한 거부권 행사에 동조한다면 국민이 국민의힘을 거부한다. 국민 옆에 여당이 설 자리는 전혀 남지 않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아울러 민주당은 법안이 폐기될 경우 끝까지 재발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요구대로 오늘 부결된 법안들을 다시 추진하겠다"며 "민생개혁법안의 좌초도, 민주당의 좌절도 없다"고 예고했다. 향후 '입법 강행→거부권→재의결→부결→재발의' 도돌이표 정국을 반복하며 여야 대치 관계가 이전보다 악화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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