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법 왜곡죄' 합리적 기준 있나 의문. 신중 검토"

최서인 2024. 9. 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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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법 왜곡죄’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법 왜곡의 합리적인 해석 기준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법 왜곡죄는 검사 등 수사 종사자가 범죄혐의를 발견하고도 수사·기소하지 않거나 증거를 조작하거나 법률 해석을 왜곡하는 등 법 왜곡 행위를 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법 왜곡죄’에 대해 “구성요건의 의미가 추상적이고 불분명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왜곡’이란 사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법 왜곡죄’가 수사기관의 업무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법원행정처는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도출될 경우 ‘법 왜곡’을 주장해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남발됨으로써 수사기관의 직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이는 한정된 사법지원의 효율적 분배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일 등에 입법례가 있긴 하지만 국내 도입할 때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1990년 이후 나치와 구동독 시기의 과거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법 왜곡죄가 의미를 갖게 됐다는 이유다. 법원행정처는 또 “미국·프랑스·스위스·일본 등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법 왜곡죄 규정을 찾아볼 수 없고, 직무유기죄 등 포괄적 구성요건에 의해서만 의율하고 있다”며 “법 왜곡죄에 담긴 행위들은 직권남용죄·직무유기 등 이미 있는 형법 규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도 짚었다.


법무부 “정상적인 수사활동 위축…부작용 우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판검사 법 왜곡죄' 등 법안을 상정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법무부 역시 “사법방해 목적으로 남용돼 정상적인 수사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다양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고소·고발 남발 등 사법방해 수단으로 악용되고, 절차지연에 따른 피해가 국민들에게 전달될 소지가 높다”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입법 취지는 타당하나, 그 내용에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현재의 직권남용죄 규정을 실질화시키는 방안과 함께 법왜곡죄의 주체를 원래 취지대로 법관으로 확대 적용하고, 이를 기초로 고려될 수 있는 내용들을 논의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법 왜곡죄’ 신설 법안은 지난 7월 대장동 변호사 출신 이건태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검찰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제3자 뇌물 등 혐의로 추가 기소한 직후 법안을 발의해 ‘이재명 방탄법’이란 논란을 빚었다.

법안이 발의되면 국회는 통상적으로 1~2일 내에 관계기관에 의견조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게 된다. 법원·법무부 등 관계기관의 회신이 오면 상임위에서는 각 기관의 의견을 종합해 법안을 검토한다. ‘법 왜곡죄’ 법안은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법안1소위에 회부됐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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