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부천 과학고 설립,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이계은 2024. 9. 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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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학고 추가 지정에 환영하는 기초단체장들을 규탄한다

[이계은 기자]

경기도 내 더민주 소속 5개 기초단체장(부천, 광명, 시흥, 평택, 화성)이 보수진영 임태희 교육감이 추진하는 '과학고 추가지정'이라는 경쟁교육 강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경기도는 지난 2010년 '학생인권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면서 공교육에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며 영향력을 끼쳐왔다.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쏘아 올린 서울 무상급식 논쟁과 시민들이 주민발의로 이뤄낸 성과인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우리 사회에 최소한 교육에 있어서는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자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경쟁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지난 정부는 고교 서열화를 유발하는 일부 특목고(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까지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일부 교육감이 바뀌면서 이 계획은 손바닥 뒤집듯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진영 단일후보가 낙선하고 보수성향의 임태희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전까지 최소한이나마 이어지던 혁신교육의 기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9시등교제 자율화 ▲학생인권조례 폐지 ▲과학고 추가 지정 등의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는 과거 학생 인권의 가치를 높이려던 방향으로부터 정확히 역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 부천 과학고 설립 홍보 벽보 부천시는 부천고의 과학고 전환을 위한 시정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관련 영상 제작, 벽보 및 시민설명회를 진행 중이다.
ⓒ 이계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행하는 교육행정, 공교육을 죽이는 칼춤을 저지할 세력의 부재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경기도 내 기초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퇴행하는 교육정책에 덩달아 호응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추가로 지정되는 과학고 2~3곳의 유치 결과를 11월 중에 발표한다고 밝혔고, 현재 용인·고양·화성·성남·부천·광명·안산·평택·이천·시흥·군포·과천 등 12곳의 기초단체가 유치 의향을 밝힌 상태다. 이중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은 5곳(부천, 광명, 시흥, 평택, 화성)이며 해당 지자체들은 과학고 선정을 위한 시민 홍보 및 구애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천시의 경우 지난 9월 10일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부천고 과학고 유치를 위한 정책 토론회'까지 열었다. 부천시는 시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9월 25일 '부천 과학고 설립추진 시민 설명회'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 제출된 반대의견 질의는 다루지 않았다.

또한 '학부모 대상 과학고 설립에 대한 인식조사'를 시작했으나 "4.학생들에게 과학분야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부천시 과학고 설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으로 과학고 설립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정부는 최근 내년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올해보다 99.4% 삭감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전액 삭감이다. 당초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 47.5%, 지자체 5%, 시도교육청 47.5%이며, 따라서 정부의 폭거에 가까운 '무상교육 죽이기' 예산편성에 대해 최소한 야당 소속 기초단체장들이 총력을 기울여 대응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미 정부는 2024년 예산에서 지자체에 지원하는 청소년 예산을 대폭 삭감함에 따라 지역의 청소년센터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은 바 있다. 그런데도 부족한 지자체 예산을 쥐어 짜내며 몇백억을 들여 과학고를 유치하겠다고 구애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2011년 전국적으로 무상급식 논쟁이 한창일 때, 부천은 지자체 최초이자 선도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를 통과시키며 모범을 보였다. 이후 친환경 무상급식은 부천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쁜 선례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24일 열린 '부천고 과학고 전환 반대 부천시민결의대회'에서 부천에 거주하는 한 양육자는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다리 깁스를 한 자녀가 며칠간 등교를 하지 못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기본 복지시설을 갖추지 못한 학교 측에 항의했더니, 교육청과 시 지원 예산이 없다고 했다며 되려 호소했다고 한다. 잇따른 민원과 항의 끝에, 내년도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 답변을 겨우 얻어냈다고 한다.

이처럼 학교 안에 가장 기본적인 시설조차 '예산부족'을 이유로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부천에 있는 네 개의 직업계고등학교 중 대부분은 매년 정원 미달로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의 차별적인 인식으로 직업계고 진학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때, 부천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곳은 소수를 위한 일부 특목고가 아니라 특성화고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공교육 죽이기' 퇴행 정책에 맞서 현재 지방자치의 역할은 교육의 공공성을 사수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으로 쌓아온 혁신교육, 무상교육, 공교육의 가치라는 사회적 합의를 기억하며, 우리 사회가 최소한 교육에 있어서는 공공성을 지켜나가자는 원칙을 사수해야 한다.
▲ 9월 24일 부천시청 남문에서 열린 부천과 과학고 전환 반대 시민 결의대회 9월 24일 부천시청 남문에서 열린 부천과 과학고 전환 반대 시민 결의대회에 양육자, 교사, 청소년 당사자 등 30여 명이 참여했다.
ⓒ 김진
부천은 현재 시민 주도로 '부천고 과학고 전환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지난 8월 12일 부천시와 시의회에 1363명이 참여한 과학고 전환 시민 반대서명을 전달했다. 정기적으로 1인시위와 집회, 행정관료 면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경쟁교육 지양 및 공교육 강화'라는 더불어민주당 강령을 위반한 부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여의도 더민주당사 앞에서 징계를 요구하는 피켓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반대활동을 펼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부천시는 묵묵부답이다.

이번 과학고 유치는 단순히 교육의 문제 차원을 넘어섰다. 부천의 경우 '부천시 발전'을 명목으로 과학고를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의문이다. 심지어 부천의 정치인들이 과학고가 없어서 인구가 빠져나간다며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등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부천에 과학고가 생기면, 부천에는 '부천 과학고 입시'를 내세우는 학원이 늘어나고 성행할 것이다. 사교육비 지출은 공공연히 늘어날 것이다. 입시경쟁으로 인한 부천 학생들의 우울감은 더 심화될 것이다.

부천 내 과학고 설립을 반대한다. 부천 뿐만 아니라 경기도 내의 그 어떤 곳에도, 전국 어디에도 추가적인 과학고 설치는 필요하지 않다. 더 나아가 이전 정권에서 사회적 합의로 떠오른 약속,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계은씨는 시민으로서 부천고 과학고 전환 반대 공대위에 참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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