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이 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쳐!” 유쾌발랄 뮤지컬 '킹키부츠'의 매력
"너 자신이 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쳐!"
아찔한 높이의 빨간색 부츠를 신은 롤라가 이렇게 외친다. 근육질의 우람한 몸에 반짝이는 미니 드레스를 걸친 그는 복서 출신의 드래그퀸. 우렁찬 목소리로 스스로 주문을 거는 듯 외치는 한 마디에 155분짜리 쇼뮤지컬 '킹키부츠'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킹키부츠'는 아버지에게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초보 사장 찰리와 드래그퀸 롤라가 힘을 합쳐 남자가 신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화려한 부츠를 만들어 폐업 위기의 구두 공장을 되살린다는 내용. 1979년 영국 노샘프턴에 있던 신발 공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범생이 찰리와 드래그퀸 롤라, 정반대인 두 사람이 우정을 쌓으며 고난을 이겨낸다는 흔한 성장 서사지만 화려한 군무와 찰떡같이 맞아 떨어지는 음악이 진부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무엇을 상상하든지 난 그 이상이지, 내가 보여줄 테니 입 다물고 상상해봐"로 시작하는 도입부로 유명한 넘버 '랜드 오브 롤라' 등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박힐 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대중적이다.
하이라이트는 군무를 책임지는 드래그퀸 엔젤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쇼. 구두 공장의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엔젤들이 다리를 찢고 점프를 하며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안무를 선보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시즌의 엔젤 6인방(김강진·전호준·주민우·최재훈·한선천·한준용)은 전원 경력직으로 전호준과 한선천은 2014년 초연부터 엔젤을 맡았고 최재훈은 지난 시즌 스윙(대역)으로 참여했다가 올해 정식 엔젤이 됐다.
공장에서 일하는 '상남자' 돈으로 변신한 고창석의 감초 연기도 웃음을 자아낸다. 여장하는 롤라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돈이 내기 복싱에서 진 뒤 받아든 롤라의 요구 조건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롤라의 이 한마디에 웃음 소리 넘치던 객석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이어지는 롤라의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쉬운 것 같지? 이게 가장 어려운 거야."
10년째 대극장에서 순항할 만큼 정평이 난 작품이지만 개막 전 유튜브 홍보로 든든한 지원 사격도 받았다. KBS 공채 출신 코미디언 이창호와 곽범의 코미디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넘버 '랜드 오브 롤라'를 패러디한 영상이 두 달 사이 조회 수 700만회를 기록하며 '롤라 열풍'을 일으킨 것.
이번 시즌에선 김호영을 비롯해 이석훈·김성규·신재범이 폐업 위기를 맞은 구두 공장 사장 찰리 역을 맡고, 찰리를 변화시키는 드래그퀸 롤라는 박은태·최재림·강홍석·서경수가 연기한다. 가장 좋은 자리인 밀라노석과 VIP 석은 캐스팅과 관계없이 대부분 회차가 고루 매진이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김호영과 서경수는 안정적인 합을 보여준다. 특히 187㎝의 우람한 체격으로 아찔한 하이힐 위에 올라선 서경수는 요염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화려한 넘버를 소화하면서도 섬세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놀랍다.
작품은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해 이듬해 뉴욕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대박을 쳤고 같은 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음악상·안무상·남우주연상·편곡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데 이어 2014년 제5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까지 거머쥐었다. 여성 작곡가 최초로 토니상 작곡상을 받은 이가 '킹키부츠' 넘버를 작곡한 팝가수 신디 로퍼다. 공연은 11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볼 수 있다. 배우들이 한 데 나와 '레이즈 유 업'을 부르며 춤추는 커튼콜을 놓치지 말 것.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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