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윤-한은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나

김현기 2024. 9. 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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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신뢰)도 없는데 뭔 물밑 대화냐
자존심 내세우면 공멸 내지 자멸뿐
둘의 어리석음에 정치와 국민 불행

김현기 논설위원

#1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여러 필수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고, 만약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나온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를 성공의 비결에 적용했다. 성공의 비결은 성공 요인을 찾지 말고 실패 요인을 피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현명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피하는 노력이 최선이라는 메시지다.

지난주 미국 프로야구에서 50(홈런)-50(도루)의 위업을 달성한 오타니의 시합에서 그걸 봤다. 눈길을 끈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상대팀 감독. 그는 10점이 넘는 점수 차에서 오타니에게 고의사구를 주지 않고 정면승부를 택했다. 결과는 홈런. 시합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 팀에는 좋지 않은 날이었지만 야구에 있어선 좋은 날이었다."

50-50의 위업을 달성한 뒤 팬들의 성원에 손을 흔들어 보이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 상대팀 포수도 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하나는 심판. 오타니가 홈런을 치고 돌아온 뒤 투수는 타석에 들어선 다음 타자에게 정해진 시간(1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축하할 시간을 주느라 기다렸다. 심판도 벌칙(1볼)을 주지 않았다. 둘 다 어리석지 않았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2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의 판단.
한 대표는 어제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에 앞서 독대 요청을 했다. 언론에 흘렸다는 게 정설이다. 의료대란과 김건희 여사 문제를 풀려는 자신의 의지, 다급함을 대내외에 알리려 했을 것이다. 현명하지 못했다. 어리석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언론플레이는 윤 대통령이 가장 싫어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왜 스타일이 다른 한동훈을 늘 옆에 두느냐"는 측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딴 건 모르지만 '공보(언론 대응)'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 윤 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봤거나, 한 대표가 변했거나, 검찰에선 통했지만 정치에선 통하지 않거나 이 셋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을 마친 후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타이밍도 문제였다. 만찬은 만찬이고 독대는 독대대로 해야 했다. 그렇게 시급하다면 추석 연휴 기간 한남동 관저를 따로 찾아갔으면 될 일이다. 굳이 대통령 체코 순방 기간에 논란을 일으킬 사안이었을까.

가뜩이나 용산 주변에선 "윤 대통령이 올 초(김경률 회계사가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즈음) 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격노하고 있는 도중에 한 대표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데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판이다. 사실 여부는 추후 밝혀지겠지만, 2년 반 남은 대통령의 위상은 최대한 존중하고 열심히 품을 팔아 당내 입지를 넓히는 게 우선이다.

#3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의 판단.
20분 일찍 도착한 한 대표와 따로 얘기를 나누기는커녕 모두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고기와 밥만 줬다. 체코 원전 수주만 자화자찬했지 "추석 기간 다들 뭐라고 합디까?"라고 민심을 묻지 않았다. 배추가 한 포기에 2만원인 금추가 되고,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심각한 위기임에도 그냥 웃으면서 기념사진만 찍었다. 보는 국민은 어지럽다. 독대란 물밑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두 사람 간 물(신뢰)도 쌓여 있지 않은데 무슨 물밑이란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을 마치고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김건희 여사 문제도 마찬가지. 그냥 좀 더 뭉개고 있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심 판결로 가라앉을 것이라 보는 듯하지만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한 대표를 계속 창피 주고 깎아내리면 자신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지만 어림없는 얘기다. 공멸 혹은 자멸이다.

다시 '안나 카레니나 법칙'. 성공보다 실패 요인을 피하라 했지만 대통령과 한 대표는 실패 요인만 찾아가는 것 같다. 현명한 판단보다 어리석은 판단을 피하라 했지만 어리석은 판단만 반복한다. 이성보다 자존심 강한 검사 출신 둘 때문에 정치도 나라도 불행하고 우스워지고 있다.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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