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딜레마에 빠진 검찰
검사는 본질적으로 여론과 타협하는 직업이 아니다. 사실을 추구하는 게 본업에 가깝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변인들의 평가가 범죄자의 죄를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취임식에서 “범죄수사는 어떤 외부의 영향이나 치우침도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직업적 특성을 반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검찰이 정치적 판단을 가미한 수사를 한다고 상상한다. 수사 대상이 유력자일수록, 시간을 질질 끌수록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김건희 여사 사건 수사가 대표 사례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여부는 4년 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명품백 사건은 지난해 12월 시민단체가 고발했지만, 5월이 돼서야 수사팀을 구성했다. 김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대면 조사한 뒤 검찰총장에겐 사후에 보고한 ‘검찰총장 패싱’ 사태까지 불거지며 의구심은 더 커졌다.
‘증거와 법리’로 먹고 사는 검찰이 명품백 사건을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한 건 악화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 처분 결과를 외부인들에게 공증받으면 수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높아지지 않겠냐는 생각의 발로다. 지난 6일 김 여사에 대한 수사심의위가 청탁금지법 등 혐의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했을 때만 해도 일리 있는 셈법 같았다.
하지만 24일 열린 최재영 목사에 대한 수사심의위에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기소 권고가 나오면서 검찰은 딜레마 상황에 봉착했다. 명품백을 준 최 목사만 기소하고, 이를 받은 김 여사는 불기소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아서다. 피의자(최 목사)가 “내가 위법을 저질렀다”며 수사심의위에서 처벌을 요구하고, 검찰이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반박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젠 수사팀이 김 여사를 기소하든 하지 않든,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검찰이 처한 딜레마적 상황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김 여사 사건을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온 나라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진 않았을 것 같아서다. 증거와 법리가 확실하다면 신속하게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사심의위가 논쟁적 수사의 도피처가 될 순 없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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