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성과내도 모자란데 ‘빈손 만찬’…윤·한, 감정 골만 더 깊어졌다

오현석, 김기정, 박태인 2024. 9. 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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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상견례를 겸해 성사됐던 24일 만찬 회동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는커녕 여권 내 갈등만 또다시 노출하는 자리가 됐다.

여권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현안 해법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재차 요청한 걸 두고 “그걸 왜 언론에 곧바로 공개하냐”(대통령실), “과거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주례회동도 했는데 독대 요청이 왜 문제냐”(당 지도부)는 식의 감정싸움만 벌어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사적(私的) 감정으로 공적(公的) 책무를 망각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영남 중진)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검찰 조직에서 오랜 기간 함께 호흡한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초유의 상황에 여권의 위기감도 증폭되고 있다. 25일 기자들과 만난 한 대표는 전날 회동에 대해 “현안 관련 얘기가 나올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며 “중요한 현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고, 그 필요가 여전히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만찬의 성과는 저녁 먹은 것”이라고 눙친 한 대표는 “정치는 중요한 민생 현안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아니겠나. 저는 그러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한 대표는 짧게라도 윤 대통령과 독대해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눌 생각이었다고 한다. 만찬 장소에 23분 일찍 도착해 윤 대통령을 기다리고, 행사 종료 뒤에도 잠시 남아 있던 이유였다는 것이다.


한측 “만찬 미리 가 독대시도” 용산 “대통령, 대화 판 깔아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날 만찬에 대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동훈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가 불발되자 행사장을 떠나기 직전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독대를 거듭 요청했고, 이 사실은 국민의힘 참석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대표가 만찬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직접 독대를 요청할 기회가 수차례 있었고, 그렇게 했다면 성사됐을 것”이라며 “언론을 통해 말하는 식이면 당분간 독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가 독대를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요청했다는 흔적만 남기고 싶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용산에서 나왔다.

이처럼 대통령실과의 소통이 꽉 막힌 상황에 대해 한 대표 측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용산에서 ‘여·야·의·정 협의체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해 놓고, 20일간 도와주는 것 하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한 대표는 처음부터 한 발은 용산과 같이 가고, 다른 한 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피벗(pivot) 플레이’를 구상했는데, 용산에 두 발 다 묶였다”고 했다. ‘피벗 플레이’란 농구 경기에서 공을 지닌 선수가 수비수를 피하기 위해 한 발은 지탱한 채 다른 발을 옮겨 딛는 기술이다.

그간 한 대표는 순직해병 특검법의 제3자 추천 방식 제안, 의대 정원 증원 유예 논의,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필요 등을 언급했다. 한 대표 측은 대통령실과의 역할 분담이라는 입장이지만 외려 당정 엇박자 논란만 커지자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친한계 장동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깊이 있게 현안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만찬만 하고 끝나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로서 적어도 건배사나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준비했을 텐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며 “독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두세 번이라도 요청할 필요가 있다. 독대는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 “사적 감정으로 공적 책무 망각”
다른 친한계 인사들도 “한 대표가 대통령이 좀 일찍 와서 ‘나랑 잠깐 얘기합시다’ 하는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다. 끝나고 나서라도 내심 기대했던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전혀 없었다”(김종혁 최고위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났다”(신지호 부총장)며 한 대표가 패싱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비한계 김재원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대표가)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며 “한 대표 스스로 ‘이 자리에선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본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닫고 있다고 비판받을 소지를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배려해 만찬 장소와 메뉴, 산책까지 제안했던 것이라고 반박한다. 윤 대통령은 만찬 중 “우리 한 대표가 좋아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거나 “우리 한 대표는 뭘 마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만찬 장소로 분수정원을 택한 것도, 산책을 제안한 것도 한 대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윤 대통령이 고안했던 것”이라며 “한 대표는 독대를 포함해 윤 대통령에게 여러 제안을 할 기회가 충분했다. 그런 판을 깔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은 중앙일보에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비공개로 수시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하고 통상적으로 그렇게 해 왔다”며 “당 대표의 독대 요청 사실이 사전 유출돼 주요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한 패싱” “한, 대통령 비난여론 초래”
양측의 불편한 기류는 만찬 준비 과정에서부터 감지됐다. 실제 식사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지난달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를 둘러싸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 대표가 충돌하며 만찬이 한 차례 연기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면, 지난 주말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대통령실이 “별도로 협의할 사안”(23일 브리핑)이라고 거부하면서 증폭됐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 추경호 원내대표가 포함된 3자 회동을 둘러싸고 양측 간 신경전도 벌어졌다. 대통령실에선 한 대표 측이 추 원내대표를 포함한 ‘만찬 전 3자 차담회’ 제안을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한 대표 측에 “추 원내대표와 함께 만찬 전 차담회는 어떻겠냐”고 역제안했지만, 한 대표 측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어떻게든 만찬이 성사될 수 있도록 양측 참모와 추 원내대표가 나서 수차례 봉합을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른바 ‘윤·한 갈등’이 재점화되는 듯한 조짐에 여권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전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했던 최재영 목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를 권고한 데 이어, 김 여사 특검법과 순직해병 특검법 등의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시점도 임박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재상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여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여권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쓴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포용하고 경청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나, ‘독대’를 두고 언론플레이만 하는 당 대표나 둘 다 치졸하고 한심하다”며 “배가 가라앉고 다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그때는 뒤늦게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썼다.

오현석·김기정·박태인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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