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로 돌아간 어르신들…“시 낭송하던 문예반 추억 만끽”

강혜란 2024. 9.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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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연극배우 김미준씨를 따라 복지관 회원들이 낭독을 위한 발성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따뜻하다는 단어를 읽을 땐 봄 햇살을 떠올려보세요. (손을 가슴에 모으고 미소 지으며) 그 느낌을 실어서 발성해보는 겁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2024 연극배우와 함께하는 인문여행-낭독, 신바람 난 ‘나’ 현장. 복지관 회원 14명이 연극배우 김미준씨 지도에 따라 도종환 시인의 ‘아름다운 동행’ ‘담쟁이’ 등을 낭독하는 훈련을 했다. 대부분 70~80대인 회원들은 돋보기를 고쳐 쓰며 종이에 적힌 시를 차근차근 읽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2회차 중 둘째 날. 앞서 첫날 김씨를 따라 복식호흡과 발성, 템포 조절을 익힌 덕분인지 대부분이 일정한 속도로 낭독했다. 김씨는 “발음을 정확히 하고 감정을 잘 전달하면서 시를 잘 읽는 게 나의 예술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낭독 중에 부정확한 발음이 나오자 “아침마다 이렇게 입을 크게 벌렸다 오므리면서 근육 터는 것 잊지 마라”고 조언했다. 2시간여 진행된 프로그램 내내 참가자들은 흐트러짐 없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시를 읽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벽에 대고 도전하듯 당당하게 ‘담쟁이’를 읽은 이건희(79·여)씨는 2007년부터 다닌 복지관에서 여러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시 낭송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 자체적으로 낭독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해왔지만, 연극배우의 시범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연기하는 분이라 확실히 달라요. 일단 호흡으로 소리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감정 표현에 대해 배웠는데 그렇게 읽으니 시가 쏙쏙 들어와요.”

김종남(76·여)씨는 “학교 때 문예반에서 서정주 시를 즐겨 읽던 때가 생각난다”며 “연애 한 번 못하고 중매로 호랑이 남편 만나 53년째 살고 있다. 자식·손주 다 키우고 여기서 시를 읽으니 이제야 내 감성을 찾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익힌 낭송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시도 따로 읽어본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있어요. 그거 열두번 읽고 울었어요. 엄마 생각나서….”

이번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사회시설 활용 인문 프로그램 일환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한국연극배우협회가 손잡고 8~9월 전국 노인·장애인복지관 20곳에서 진행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소속 배우 10명이 각 기관에 파견돼 낭독 시범을 보였다. 텍스트는 시·소설·수필·희곡 등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기관마다 15명 안팎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날 현장에 함께한 신바람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는 “연극배우란 게 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 직업인데,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어르신들께 낭송을 지도해보니 각자 가슴에 묵혀둔 것을 꺼내는 효과도 있더라”라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댄스·운동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어떤 분은 이렇게 내면을 드러내고 싶어해요. 호흡·발성 연습은 어르신들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되죠.”

임대일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대학로가 많이 어려운데 연극배우로선 본업 외 활동에 재능을 활용할 수 있어 윈윈”이라며 “시범사업을 통해 개선할 점을 찾고 회차도 더 늘어났으면 한다. 참가자와 강사 간에 친밀감·신뢰가 쌓이면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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