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임박했다더니…돌연 말 바꾼 발란, 진실 공방 확산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9.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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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플랫폼 발란의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발란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와 거래액 기준 지난해 국내 1위 명품 플랫폼이지만,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티메프’ 사태 이후 플랫폼을 바라보는 판매자와 소비자 눈길이 날카로워진 가운데, 발란은 최근 복수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가 임박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목된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서 “유의미한 논의가 없었다”고 밝히면서 진성 투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수백억원대 규모 투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던 발란 측도 돌연 “(투자 유치 관련 정보는) 시장에서 돌던 투자 분위기만 전체적으로 에둘러 정리한 뒤 텍스트로 주섬주섬 얘기한 것이 전부”라며 말을 바꿔 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발란 사이트에 여성용 레깅스가 2억원을 웃도는 호가에 올려져 있다. 미정산을 우려한 입점 업체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해 거래를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발란 홈페이지 캡처)
中·日서 투자 임박 홍보

해당 기업 “사실무근”

지난 7월 말 발란은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리셀 플랫폼 포이즌, 일본 온라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 등이 수백억원대 투자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당시 발란 측은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투자자(FI)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투자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며 “밸류에이션(기업가치)에 따라 변동될 수 있지만 시리즈D 단계로 투자 규모는 앞서 시리즈C(당시 기업가치 3000억원)보다 훨씬 웃돌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최소 6~7개 플랫폼 기업이 수백억원대 투자 ‘러브콜’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매경이코노미 취재 결과, 해당 기업은 “유의미한 투자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발란이 투자 유치가 임박했다고 밝힌 주요 3개 기업(알리바바·포이즌·조조타운) 가운데 중국 알리바바와 포이즌 측은 “본사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일본 조조타운 측은 “(보내준) 한국 뉴스에 놀랐으며 기사 원문을 공유해주면 좋겠다”라며 “발란에 투자가 이뤄진 적 없으며 경계감을 환기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양측 설명이 대조를 이루면서 벤처캐피털(VC)과 이커머스업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발란이 ‘재무 절벽’ 상황을 버티기 위해 이런 전략을 쓴 것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급작스러운 폐업으로 피해를 키웠던 알렛츠 역시 티메프 사태 이후 판매사 이탈 조짐이 보이자 산업은행 투자가 임박했다며 임직원을 달랬지만, 실제로는 신규 투자 요청이나 추가 투자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VC업계를 중심으로 이런 의구심을 제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통상적인 투자 유치 프로세스에 비춰, 극도로 민감한 투자 유치 과정을 피투자사인 발란이 ‘보도 참고 자료’ 형식을 빌려 스스로 공개한 것부터 석연치 않다는 진단이다. 피투자사가 투자 계약서 법인 인감 날인은 물론, 자본금 납입이 이뤄지기도 전 투자 규모를 특정하고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투자업계 중론이다.

발란처럼 시리즈C 이후 투자의 경우, 피투자사와 투자 의향 기업이 투자 계약 관련 주요 사항을 담은 텀싯을 주고받으며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텀싯은 투자 본계약의 뼈대가 되는 기초문서다. 투자 계약을 상호 검토하기 전 기업가치, 투자 금액, 주식 종류, 주금 납입 일정 등을 미리 정리한 것. 텀싯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NDA(비밀유지약정서)도 함께 작성된다. 투자 논의와 실사 과정에서 영업 관련 핵심 정보가 노출되므로, 투자 본계약 체결 전 NDA를 맺는 게 통상적인 투자 프로세스다.

이에 비춰, 피투자사(발란)가 투자자 포지션(SI 혹은 FI)이나 상세 투자 규모 등을 스스로 밝히는 것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일이라고 다수 전문가가 입을 모은다. 매경이코노미는 발란 측에 ‘3개 기업과 텀싯을 주고받거나, 기업가치 특정을 위해 텀싯을 기반으로 논의가 이뤄진 과정’과 ‘투자 논의 외부 공개에 관해 3개 기업에 동의를 구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질의했으나 발란 측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발란 측은 “(기업가치를 특정한 것은) 시장에서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만 두루뭉술하게 전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발란 측 설명대로면, 판매사 불안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시장에서 돌고 있는 불확실한 투자 정보’를 언론에 배포했다는 의미다.

명품 브랜드 유통사로, 발란 3대 주주(지분율 7.3%)인 리앤한이 보유 지분 전량(약 20억원)을 손상차손 처리한 것도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리앤한은 프리 시리즈A 단계에서 발란에 20억원을 투자했지만,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최근 이를 전액 손상처리했다. VC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투자 논의가 지난해부터 오갔다는데, 주요 주주가 보유 지분 전량을 손상처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최근 강조한 ‘분기 흑자’ 사실 여부에 대해서도 발란 측은 뚜렷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발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발란은 비상장사로 분기 실적 공시 의무가 없으며 ‘흑자의 주어’를 공개하지 않아 뒷말을 낳았다. 발란 측은 흑자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질의에도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기준 흑자 수준’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아직 정확한 수치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만 밝혔다.

판매사, 정산 우려 불안감 여전

‘분기 흑자’ 사실 여부도 논란

입점 판매사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두고도 상반된 시선이 존재한다. 발란에 따르면 입접 판매사 규모는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총 3190개에서 3310개로 120개사가 늘었다. 지난 7·8월 두 달 사이에도 180개사가 늘어 총 3490개사가 입점했다는 게 발란 측 설명이다. 발란 측은 “심사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입점 심사를 표준화하는 한편, 고객 보상제 완화 등과 같은 파트너 친화적 정책을 강화한 것이 적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플랫폼을 떠나는 사업자가 늘고 이를 급히 메우는 과정에서 입점 문턱을 대폭 낮췄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정황도 목격된다. 명품 플랫폼 판매사가 모인 온라인 카페 ‘돈품사’에서는 ‘몇 년 전에는 입점 신청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던 발란에서 갑자기 입점 안내 절차를 보내와 당혹스럽다’거나 ‘느닷없이 입점 승인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등의 글이 잇따른다.

발란 판매사 관계자는 “발란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막으려 고의 품절 처리하거나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가격에 올려놓는 판매사도 있다”고 털어놨다. 가령, 발란 사이트에는 N브랜드 레깅스가 2억원을 웃도는 호가에 올려져 있다.

지난해 발란 손익계산서에서 판매촉진비가 ‘마이너스’로 잡힌 것도 판매자 이탈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 시각이다. 회계사 출신 애널리스트는 “손익계산서상 비용 항목에서 (-)가 표시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선집행됐던 판매촉진비 가운데 일부가 회수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전기에 판매 관련 비용 인식을 과다하게 했다가 제품 자체가 팔리지 않아 일부를 환입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VC업계에서는 발란이 기존 투자자로부터 사실상 ‘구제금융’ 성격 투자를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묘수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발란이 낮은 전환가액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고 기존 투자자가 이를 십시일반 받아가는 식이다. 동종업계 플랫폼 기업 트렌비가 이렇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최근 트렌비가 발행한 CB 전환가액을 고려하면 이 회사 기업가치는 2년 전보다 약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VC업계 투자 행태가 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VC 대표이사는 “산업 진출입 활성화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옥석을 가려 선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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