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 중소기업에 세무조사 유예…국·공립 직장어린이집도 개방
화장품 제조 중견기업인 마녀공장 직원들은 각자 생활패턴에 맞게 출근하고 퇴근한다. 회사가 필수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시간대도 정해두지 않은 ‘완전 자율 출퇴근제’를 운영 중이라서다. 덕분에 직원들은 원하는 시간대에 업무를 보고, 육아에 필요한 시간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일·가정 양립 문화를 선도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정부가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출산 장려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서 더 많은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하는 차원이다. 임신·육아기 근로자의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를 활성화하고, 배우자 출산휴가도 보다 쉽게 쓸 수 있게 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2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이같은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앞서 6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 발표 후 현장 의견 등을 수렴해 추가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 2분기 출생아 수가 5만6838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해 출산율 반등의 불씨를 살렸다. 이제는 확실히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일·가정 양립에 앞장서는 우수 중소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우선 여성가족부가 부여하는 ‘가족친화인증’을 받거나,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일·생활균형 우수기업’에 선정된 중소기업에 대해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하기로 했다. 저고위에 따르면 세무조사 유예는 국세청과 협의가 완료돼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대상은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중소기업 4100여개와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60여개다. 저고위 관계자는 “국세 부과제척기간(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이라 이 기간 내에서 국세청이 유예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이들 기업의 지방세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서울·부산·광주·대전·충북 등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엔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 대상 정책자금 및 수출신용보증 한도 확대 등의 인센티브도 도입된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전날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중소기업은 인력 공백과 비용 부담 등으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도입이 쉽지 않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를 선도하는 중소기업의 부담을 추가로 줄여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의 유연근무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긴 출퇴근 시간에서 오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직장인들의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은 120분에 달했다. 정부는 특히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임신·육아기 근로자에 대해서부터 유연근무 제도 적용을 추진할 계획이다.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 시에도 눈치를 덜 보게 된다. 현재는 근로자가 사업주 허가를 받는 식이지만, 앞으론 법을 바꿔 사업주에게 고지만 하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단축 근무, 반차 등으로 하루 4시간만 근무할 경우, 근로자가 원하면 휴게시간 없이 바로 퇴근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도 개정한다. 지금은 4시간 근무 시 30분 휴게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또 국·공립 직장어린이집 문을 지역 주민에게 열기로 했다. 현재 정부청사에서 운영 중인 18개 직장어린이집 가운데 정원에 여유가 있는 곳은 당장 다음 달 중 지역민에 개방할 전망이다. 정부청사 외 국가기관(328개), 공공기관(138개), 지자체(148개) 등에서 운영하는 직장어린이집도 정원에 여유가 있으면 개방할 계획이다.
이는 포스코가 시행 중인 ‘상생형 직장어린이집’ 사례를 참고해 마련됐다. 포스코는 자사 직장어린이집을 그룹사·협력사뿐 아니라 해당 지역 중소기업까지 총 190개사 직원 자녀들이 이용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주 부위원장은 “민간 부문의 노력에 발맞춰 정부도 상생형 직장어린이집 확산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성과공유회에서는 포스코를 비롯한 5개 기업(마녀공장·한화제약·LG전자·신한금융그룹)과 1개 지차체(서울시)가 일·가정 양립 우수사례로 소개됐다. 이들 기업을 포함해 35개 가족친화 기업 사례가 수록된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사례집’도 경제 6단체와 금융협회 공동으로 발간된다. 일·가정 양립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 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일·가정 양립 위원회'(가칭)를 설치해 우수사례를 공유해나갈 예정이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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