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크게 틀어달라더니 누워서 딥키스... 모멸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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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인간 사회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역, 문화, 연구 방법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각각 1%와 4% 합쳐서 5% 정도로 추정한다.
내가 몇 해 전 읽었던 (끝내 출처를 찾을 수 없었던) 심리학 책에서는 미국 학자들이 백 명 단위의 다양한 모집단을 만들어 심리성격 테스트를 진행했다. 집단의 형태는 교사 백 명, 성당이나 교회 수도원 등의 종교 집단에서 백 명, 회사원이나 학생들만 따로 백 명 심지어 길을 지나는 행인들을 무작위로 모은 백 명 단위의 집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어떤 집단도 예외 없이 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을 보인 비율이 백 명 중 4~5명, 즉 5% 내외의 범주 안에 있었다. 종교 집단도 그렇다는 사실은 내겐 다소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학자들은 또한 이기적 성향의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을 실험을 통해 비율 분류를 했는데 대략 10% 내외의 사람들이 매우 강한 이타적 성향을 보였고 매우 강한 이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특별히 이타적이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이기적이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기적 성향이 강하지만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이나 법 혹은 규범 속에 이기성을 자제하면서 이타성과의 균형을 유지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타적 행동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이기적 욕망의 소산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혹은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이타적이었다가 언제든 이기적 인간으로 혹은 이기적이었다가 이타적 인간으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사람의 이타성과 이기성은 결국 그 사회의 지배적인 흐름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해서 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사회를 지배하는 도덕과 양심 그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5%의 진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독일 나치당이 합법적 절차로 권력을 잡은 1933년을 살았다면 당시 독일 국민들처럼 아리아 인종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히틀러에게 표를 던지고 유대인에게는 돌을 던졌을 확률이 높다.
내가 만약 2022년 소련과의 전쟁 이후를 사는 우크라이나 군인이라면 러시아 변방에서 양을 치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 온 스무살 짜리 목동 출신 징집병을 죽이기 위해 자유의 이름으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내가 만약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다면 집 안에 있는 금붙이란 금붙이는 싹 다 쓸어 모아 국채보상운동에 아낌없이 갖다 바친 351만 명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위에 기술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생활 반경 안에는 5%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나 늘 주변을 서성거린다. 뿐만 아니라 10%의 착한 사마리아인과 20% 정도의 내겐 썩 이롭지 않은 강한 이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지만 상황에 따라 혹은 상대적 관계에 따라 좋은 사람이었다가 나쁜 사람이 되거나 혹은 나쁜 사람이었다가 좋은 사람이 된다. 이만큼 살면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한 번은 세게 맞기도 하고 언제 어떤 이유로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느닷없이 동아줄을 내려준 은인이 나타나기도 했던 원리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대목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5%를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분명한 현실 인식이었다. 얼른 생각했을 때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사람 별로 살지 않는 시골에 들어가 사는 거지만 나는 그것도 해봤다. 소용 없다. 모수가 줄어도 비율은 유지되고 충격은 배가된다. 아무리 궁벽한 시골이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 같다는 말씀이다.
5%의 진실을 아는 게 중요한 건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다. 당하는 건 똑 같아도 그와 같은 인간 구성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니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나쁜 일이 (재수 없는 건 틀림없지만) 드디어 내게 닥쳤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하게 된다.
이는 사건 이후 마음을 추스르고 피해를 복구 하는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라는 쓸데 없는 고민과 낙담 심지어 자책까지 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고 감정소모도 적어지면서 재빨리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고도 여유가 생기면 지난 과거를 복기하면서 그 때 그 인간이 그런 인간이었구나 라며 무릎을 치는 깨달음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책으로 경험으로 알고 있던 5%의 진실은 택시 운전을 한 이후 만나게 된 다종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더욱 굳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 서울역 택시 승강장.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개념과는 사뭇 다를 수 있지만 택시도 문제적 손님의 비율이 5% 내외다. 10% 내외로 상대방을 밝게 배려해주는 이타적 손님이 있고, 20% 내외의 손님은 살짝 긴장감을 들게 하는 날카로움을 비친다.
나머지 손님들은 내가 알아차릴 만한 어떤 내색도 없이 조용하게 이동한다. 하지만 이동 중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좋은 건 좋은 방식으로 나쁜 건 나쁜 방식으로) 거기에 맞는 반응을 한다. 대체로는 그 방식을 자기 이익을 기준으로 사회 통념에서 허용하는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5%의 문제적 인간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예상되지 않은데 결과는 항상 예상을 뛰어 넘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투잡으로 택시를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생초보'였다. 손님을 태울 때마다 초긴장을 할 때였고 손님에게는 그야말로 극존칭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의 예절로 수행하고 있었다.
강남 주택가에서 모녀를 태웠다. 대화를 들어 보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어디 학원에 등록 전 평가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미 출발부터가 늦었다. 게다가 도로는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성마른 목소리로 아저씨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라는 명령조 말에 그치지 않고 뒤에서 계속 씩씩대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생초보' 답게 금방 고객의 마음에 빙의되어 최대한 빨리 가려 노력했지만 이미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저씨 아니 옆에 차선이 비어 있으면 그리 가야지 왜 이 차선에서 가만히 계시는 거예요!" 얼굴까지 붉어지면서 내는 큰 소리였다. 순간 너무 깜짝 놀라고 당황해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버럭 어머니와 사과하는 딸
잔뜩 밀려 있는 몇 개의 차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중이라 그녀의 말대로 해도 결국은 곧 나란히 달리게 되어 있는데 그런 설명이 그녀에게는 전혀 의미없는 상태라는 데 나는 더 절망하고 있었다.
차는 꼼짝 않고 말은 소용없고 뒤에서는 계속 큰 소리로 신경질을 부리는데 머리만 하얘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네비게이션 안내가 시내 도로를 우회하는 고속화 도로를 가리켜서 차선을 변경하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목소리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지금 이 시간에 그 도로가 얼마나 막히는데 그 쪽으로 가는 거예요!"
나도 내심은 화가 잔뜩 나 있었지만 노련한 대처를 하기에는 내가 아는 상식이나 경험치가 너무 모자랐다. 나는 손님에게는 그저 끝까지 정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소리를 지르는 손님에게는 차를 멈추고 운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그 때 나는 알지 못했다.
"손님. 네비게이션 안내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가 싫으시면 그럼 원하시는대로 가 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다시 저쪽으로 가면 더 늦잖아요. 그냥 가던 대로 가세요. 하지만 괜히 이쪽으로 와서 더 늦기만 해 봐 절대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계속되는 큰 소리에 나도 분노감이 고조되고 있었지만 가만히 하지만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중학생 딸의 표정을 보니 뭐라 항의 할 생각이 수그러졌다. 차는 고속화 도로에 들어섰고 그녀의 말과는 달리 도로는 크게 막힘 없었다. 차는 술술 달려서 예상 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가 막힘없이 도로를 달리는 동안 폭발하던 그녀의 입이 조용해져 있었는데 차가 멈추니 한 마디 말도 없이 여전히 성난 얼굴로 딸보다 먼저 성큼 내려서는 걸어가버렸다. 엄마가 폭발하는 동안 난처하고 잔뜩 풀죽은 표정으로 웅크리고만 있던, 생김은 엄마를 닮지 않았던 중학생 딸은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잠깐 동안 내게 진심을 담은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저씨. 죄송해요."
▲ AI 가 만들어 준 위험한 택시 안 풍경 |
ⓒ 김지영 |
나는 이제 개인택시 운전사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수 만 명의 사람들을 겪었다. 그 중에 예외없이 수 백 명에 달하는 5%의 사람들이 있었다.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그들이 안하무인으로 택시기사를 괴롭히는 방식은 다양했다. 그런 사람들이 술까지 먹었다면 십 점 만 점에 십 점 짜리 난이도까지 더해진다.
택시를 하기 전이라면 혹은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택시 안에서 벌어진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혼자 듣지 말고 크게 틀어달라는 커플의 기분 좋은 요구를 흔쾌히 들었주었더니 버젓이 드러누워 쪽 소리가 나게 딥키스를 할 때 그들을 위해 운전하는 나는 모멸감이 든다.
예로 들은 소녀의 엄마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잊을 만하면 벌어지지만 손님이 가고 난 자리에 흥건하게 소변이 찰랑거린다던지 똥 묻은 휴지가 버려진 경우도 있다. 예고 없이 천연덕스럽게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 잘 가고 있는데 왜 이리 더디 가냐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깜깜한 밤 이제 한 스무 살 먹어 보이는 어린 청년이 시 경계 허름한 빌라 골목을 조심스레 지나고 있는데 눈을 가느다랗게 뜨면서 'X발, 우리 집을 이렇게 돌아서도 가는구나'라고 혼잣말을 할 때면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택시라는 직업이 분명히 일반 다른 직업보다 위험 요소가 많은 건 부인할 수 없다. 손님과의 밀접도가 높고 위험으로부터의 물리적 대응력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직업적 특성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택시 손님들이 보여주는 심리성격의 구성 원리는 5%와 20%와 그리고 나머지로 구분되는, 앞서 설명한 실험에서의 모집단 비율을 벗어나지 않는다. 택시가 아니어도 그러니까 그게 어떤 직업이라도 그 비율 안에서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걸 나는 완전히 이해했고 수긍했으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5%의 문제적 인간들 만큼은 이해하지도 수긍하지도 따라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존재는 인정하되 행위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5% 인간들에 대한 내 생각을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책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제 2부의 시작을 알리는 속표지 유일한 문장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 요나스 요나손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2부 속표지. |
ⓒ 김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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