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성과 꼭 같아야 하나"…日총리후보도 비틀, 이 제도 어떻길래 [줌인도쿄]

오누키 도모코 2024. 9.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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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일본의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27일)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재 선거의 쟁점 중 하나가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여부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 전 환경상이 “총리가 되면 1년 내 (선택적 부부별성제의) 실현을 위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약을 내걸면서 주목받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지난 6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부동성 vs 부부별성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법적으로 부부의 성(姓)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선택적 부부별성제는 결혼 후에도 부부가 결혼 전 성을 유지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다. 보수적 성향의 자민당 지지층 사이에선 반대가 강한데, 일각에선 이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지지율이 주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민법 제750조에서 ‘부부는 혼인 시 남편 또는 아내의 성을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을 바꾸는건 남편 혹은 아내 어느쪽이든 상관없지만 실제로 바꾸는 건 95%가 여성이다 .메이지(明治) 시대(1968~1912)에 제정된 옛 민법엔 ‘아내는 혼인으로 남편의 집에 들어간다’고 명기돼 있는데, 이런 과거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직장 등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결혼해 성이 달라졌을 뿐인데, 결혼 전과 동일한 인물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원치 않아도 결혼 여부 등 사생활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생겼다.

성의 변경은 결혼에도 영향 미친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성이 바뀌는 것이 싫고 귀찮아서’라고 응답한 미혼 여성이 많았다. 이같은 응답은 20~39세 남성(11.1%)보다 여성(25.6%)의 비율이 높았다. 40~69세에서도 이런 성향은 두드러졌다. 남성(6.6%)보다 여성(35.3%)이 월등히 성 변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았다.


아침드라마에도 나오는 ‘고민’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방송 중인 ‘아사도라(아침 드라마)’에서도 최근 이런 장면이 나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러포즈를 받은 주인공 여성이 “성을 바꿔야 하는 것이 고민된다”고 털어놓자, 상대 남성은 여성의 성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남성의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결국 두 사람은 사실혼을 택한다.

부부로 성이 같아진다는 것


졀혼 전 성을 병기한 여권 이미지.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캡처
최근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직장에서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거나, 신분증에 결혼 전 성을 함께 쓰는 방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병기는 어디까지나 편의적 조치에 불과하며 결혼 후 얻은 남편의 성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에선 혼전 혼후 성의 병기를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다. 여권에 결혼 전 본인의 성을 병기하는 게 대표적이다. 외무성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외적인 조치로 IC칩엔 기록되지 않는다”며 “비자·항공권은 결혼 전 성으로 취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부동성(夫婦同姓)의 오랜 논란


이런 이유로 일본의 부부동성제는 일본 안팎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세 차례나 결혼 전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일본 법무성 법제심의회도 지난 1996년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시 법무성은 법안을 준비했지만 법제화엔 이르지 못했다. 지난 6월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민법을 개정해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국회에 법안은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좀 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자민당 총재 선거로 논의 불붙어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공약으로 들고나온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30년 이상 논의해온 이 문제를 결착(決着)해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선택권을 늘리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가 총재 선거 슬로건으로 “결말을 짓는다”는 의미의 단어 ‘결착’을 내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영옥 기자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부부별성제에 대한 입장은 성별과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2021년 시행된 내각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택적 부부별성 도입(28.9%)’ 응답과 ‘부부동성 유지(27.0%)’ 응답이 엇비슷한 비율이었다. 여성의 경우 18~29세(45.7%)와 40~49세(47.0%)에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찬성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반면 70세 이상의 남성 절반(49.9%)은 ‘부부동성 유지’를 원했다. 부부가 별성을 선택할 시엔 ‘가족의 일체감이 상실된다’거나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지지율이 선거 중반부터 주춤한 요인 중 하나가 선택적 부부별성제 공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재 선거 투표권을 갖고 있는 자민당 당원들은 고령의 남성이 다수인데, 이중엔 부부별성에 부정적인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3) 경제안보상의 부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30년 이상 이어진 일본의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문제는 이번 총재 선거 결과에 따라 진행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이 지난 9일 총재 선거 출마 회견을 하고 있다.다카이치 사나에 유튜브 캡처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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