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나서달라” 호소하고 국제사회 “이스라엘은 히틀러” 비판해도…꿈쩍않는 미국

김이현 2024. 9. 2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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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두고
친이스라엘·친팔레스타인 표심
모두 고려 ‘딜레마’
평화적 해결 ‘회의론’도 퍼져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의 한 마을에 이스라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상자가 2000명을 넘은 레바논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시민 단체 등이 미국에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은 무기 판매 등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압박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내 전면전을 경고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선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민심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 탓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압달라 부 하이브 레바논 외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관련해 “강력하지도 않고 약속도 없다”고 지적하며 “중동과 레바논과 관련해 진정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우리 구원의 열쇠”라고 호소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전날 아침부터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에 대대적인 공습을 진행했다. 레바논에선 5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569명이 사망하고 1835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 격화에 대해 "전면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지만 구체적인 확전 방지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유엔 총회는 미국과 이스라엘 성토장으로 변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테러 행위로 시작된 것이 팔레스타인 전체 국민에 대한 집단적 처벌이 됐다. 방어의 권리는 복수의 권리가 됐다”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히틀러처럼 다른 나라들이 힘을 합쳐 이스라엘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두고 집단 학살이라고 강조했다. 전쟁 범죄와 정착민 식민지주의와 같은 용어도 사용됐다.

폴리티코는 “세계 지도자들이 미국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분노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 향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 일부 도시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은 막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무기 판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지원 등을 이용해 네타냐후 총리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 뉴욕의 한 식당을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크진 않다. 아랍계 등 친팔레스타인계나 유대인 등 친이스라엘계 모두 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집단이다.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싱크탱크인 크라이시스그룹의 마이클 와히드 해나 디렉터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그 정도의 외교적 마찰을 조장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 방위가 미국 안보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든 정부에선 무기 수출을 보류하거나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이란이나 헤즈볼라 등 대리 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까 봐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미국 정부 내에서 평화적 해결에 대한 회의론도 만연해지고 있다. 일부 미국 정부 관계자들조차도 바이든이 무기 수출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비공개적으로 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레바논 공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을 시행한 이후 바이든 정부 내에서 헤즈볼라 문제를 둘러싼 이견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폴리티코는 “백악관의 일부 관계자들은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을 지지하는 반면 국방부와 정보기관의 다른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의 전략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미국 관리는 “행정부는 아직 갈등을 전쟁으로 공개적으로 선언할 의향이 없지만 대부분 관리가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점점 더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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