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머리카락 뽑는 청소년

2024. 9. 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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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K는 몇 년 전부터 머리카락을 뽑는다.

처음에는 공부할 때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하더니 차츰 머리카락을 꼬다가 뽑아 버렸다.

머리카락을 뽑는 행위도 이런 쾌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거다.

충동을 제거하려고 투쟁하고 억누르기만 하면 어느 순간 충동과 욕구가 폭발하여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뽑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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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탓하는 인과관계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여고생 K는 몇 년 전부터 머리카락을 뽑는다. 처음에는 공부할 때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하더니 차츰 머리카락을 꼬다가 뽑아 버렸다. 차츰 그 양이 많아져 책상 서랍에 수북이 쌓였다. 자기 전엔 더 심해져 베게 밑에 숨겨둘 정도이다. 정수리 부근이 머리카락이 휑해져 민머리처럼 보인다. 스스로 창피해하고 위축되어 갔다.

K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완벽주의자이다. 딸의 모습이 늘 불만족스럽다. 따라서 지적과 비판이 많았다. 더 나은 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K는 자신을 비난하는 불만족스러운 아이로 성장했다. 유약한 어머니는 강한 성격의 아버지에 짓눌려 자기주장을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K를 그저 지켜보는 무력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비판적인 K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다. 치료의 방법이다. 이렇게 해본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K의 얼굴을 떠올리고 야단맞으며 주눅 들어 있는 어린 K의 표정을 떠올린다. 현재의 K가 해주고 싶은 말, 연민과 격려의 말을 건네보게 한다’ 어린 시절 K의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보듬고 돌보아 주는 연습을 반복한다. 자신에게 혹독했던 모습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또 자신을 관찰하는 연습을 해본다. 머리를 뽑는 습관은 충동 조절의 문제이니 충동이 올라옴을 알아차리고, 이 충동을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충동을 관찰하게 한다. 충동에 따르는 행위는 행위를 했을 때의 일시적 보상이 있기 때문에 반복된다. 습관은 급기야 중독이 된다. 그 보상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언정 그 순간 쾌감이라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습관은 형성되는 거다. 술이 그렇고 약물이 그런 것처럼.

머리카락을 뽑는 행위도 이런 쾌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거다. 그러므로 이런 충동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싸우기보다는 충동을 일단 관찰하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충동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파도가 휩쓸려 몰려 왔다가 물러나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충동을 제거하려고 투쟁하고 억누르기만 하면 어느 순간 충동과 욕구가 폭발하여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뽑게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런 충동을 유발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노출해 보는 거다. 예컨대 머리카락 뽑는 순간을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한 가닥을 잡고 만지고 비벼보고 촉감을 관찰한다. 그리고 대안 행동을 찾아 머리카락을 뽑는 행위를 멈추는 연습을 하는 거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런 습관과 싸우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라고 질문해 보고 그 행동을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이라도 시도해보는 거다. 관심의 차원을 바꾸어 보자.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엄마의 무능함이 나를 방치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는 식의 인과관계 논리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그 안에서 힘들었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갖고, 현재 현명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 해결 방법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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