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사상은 '사랑'이다

임효준 2024. 9. 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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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정호 신문명정책연구소 상임고문(대한노인회 고문)

[임효준 기자]

▲ 제정호 고문 24일 장기표 선생의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그의 영원한 동지로 곁을 지킨 제정호 고문을 만나 장 선생을 기억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 임효준
"장기표 선생의 근본 사상은 '사랑'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굉장히 잘하는 분이셨어요. 제가 허리 디스크 때문에 걸음이 빠르지 못한데 항상 걸어갈 때면 속도를 맞춰주고 기다려 줬어요.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었구요. 여러 사람과 식사할 때도 반찬이나 필요한 것들을 나이 어린 사람에게 시켜도 되는데 직접 가져왔어요."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이 지난 22일 새벽 향년 78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저서 <위기의 한국, 추락이냐 도약이냐>를 지난 6월 21일 자에 발표한 지 3개월 만이다. 어쩌면 지상에서 마지막 혼신의 끝을 담아 마지막 사투를 버린 유서 같은 글이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장기표 선생의 빈소
ⓒ 임효준
2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그와 함께 했던 제정호 신문명정책연구소 상임고문을 만났다.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장기표 선생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친분이 있어 옛날부터 알고 있다가 동생이 작고한 이후 장 선생이 대전 정부청사 이전 반대 1인 시위를 할 때 그의 옆에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됐습니다."

제정호 상임고문의 동생은 한국 빈민운동의 대부,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고 제정구 의원(14~15대)이다. 지난 1999년 2월 9일 54세로 생을 달리했다.

"그 당시가 이명막 정부 광화문 데모가 한창일 때인데 실제로 장 선생에게 장관 제의가 있었는데 본인이 거부했습니다. 그 때 장관을 했어야 하는데 속으로 '이 양반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물어보니 물들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세상의 탐욕, 세상 욕심 부리면 안 된다고, 동생이 못한 것을 형이 대신 돕는다고 생각했을 때 장기표 만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옆에서 겪어보니 더욱 놀랐다고 했다.

"장 선생은 1세대 아니 2세대 앞선 선각자입니다. 이 양반의 '자아실현' 정신은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해방을 전제로 걱정 없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립·복지·환경·문화·도덕 이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입법·사법·행정 전부 평등해야 하고 국가 도덕이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장기표 선생의 마지막 저서 <위기의 한국, 추락이냐 도약이냐> 장 선생은 마지막까지 한국을 걱정하며 혼신의 뜻을 전했다.
ⓒ 임효준
그의 마지막 저서 <위기의 한국, 추락이냐 도약이냐>의 머리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지금 한국 정치는 비전도 전략도 없이 오직 집권욕에만 사로잡힌 여야 정치 세력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뤄 나라와 민생을 거덜내고 있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알고 거기에 맞는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생활 곧 의식주와 의료, 교육을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한 가운데 일하고자 하는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 혁명에 앞서 의식 혁명을 먼저 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쓴 것임을 밝혀둔다."
"스웨덴이란 나라에서는 국회 부의장이 비서 없이 커피를 손수 타 손님을 대접하고 총리 지명 1순위 부총리가 법인카드로 초콜렛을 사 먹은 지난 일 때문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교통부 장관 후보가 지난 시절 주차 위반 때문에 그리고 당 대표 후보가 지원금을 잘못 사용한 지난 일이 알려지면서 당 대표에 낙마하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 일어날까요?"

그는 장 선생과 함께 꿈꿨던 세상을 역설했다. 이탈리아의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던 '오성운동' 같이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맹비난하며 투명성과 청렴함,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해 시민들이 직접 정당까지 창당하며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을 모델로 삼았다.

"특권 폐지 운동은 장 선생이 한평생 재야에서 활동한 모든 것을 바친 몸부림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병상에서 저에게 전화를 주시고 신문명정책연구소와 특권 폐지 운동에 대해 논의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걱정 말고 치료에만 집중하시라고 했었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의 저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여와야, 보수와 진보, 나아가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구분 없이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특권 카르텔'을 형성해서 온갖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 '특권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결코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될 수가 없다. 특권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는 장 선생과 함께 실패를 맛본 특권폐지당의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 장기표 선생 지난해 11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특권폐지당'(가칭)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창당 선언을 하고 있는 장기표 대표.
ⓒ 임효준
"초기 특권 폐지 운동을 발표했을 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정당 창당까지 수천 억의 큰 금액으로 돕겠다고 나선 기업가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들로 인해 장 선생이 더 일찍 떠나셨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선거 막판 제대로 창당할 수 없어 기존 정당을 찾아 서로 합의에 의해 이름까지도 생소한 '가락특권폐지당'이 되면서 국민에게 더욱 표를 받지 못했다.

정치아카데미 1기 역시 2기로 이어지지 못했다. 운영 미숙과 함께 새로운 신선한 정치 지망생을 찾을 수 없는 지금의 한계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권 폐지 운동은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장 선생의 뜻을 이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언어로 낡은 사람들과 이별해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장례식장을 지키는 가운데 오후 9시가 되니 상주 외에는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 김문수 장례위원장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순간 장 선생과 특권 폐지 운동을 함께했던 홍정식 활빈당 대표가 품에서 현수막을 펼치며 "특권 폐지"를 외쳤다.
▲ 김문수 장례위원장과 홍정식씨 오후 9시 마지막 인사 자리에서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품에서 꺼낸 현수막을 들었다. 장기표 선생의 특권 폐지에 대한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 임효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에도 실립니다.일반 SNS 등에도 함께 게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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