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에서 그림 그리는 김민희, 홍상수가 말하는 순리
[조영준 기자]
▲ 영화 <수유천> 스틸컷 |
ⓒ (주)영화제작전원사 |
01.
장르나 형식을 떠나 국내 영화감독 가운데 홍상수 감독만큼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는 감독은 보기 드물다. 누군가는 그가 오래전부터 구축해 온 자신만의 스타일 혹은 형식이라는 것이 큰 자본 없이도 짧은 회차 안에서 즉흥적으로 완성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으로 흠집을 내기는 부족하다. 적절히 구축된 환경 속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창작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단순히 최근 10년의 기록만 계산해 봐도 20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출했다. 작가 및 연출자로서의 능력만 보자면, 그는 현재 어떤 누구보다 뜨겁고 열정적인 인물이다.
영화 <수유천>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의 활동을 되짚어본 건 최근 작품들에서 외견상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떤 순간 틀을 차고 나오는 포인트를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직관적인 것이 <물안에서>(2023)에서 시도했던 시각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단순한 기법이라고 보일 수 있었겠으나 대체로 내러티브의 변형이나 극의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왔던바,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역행'하는 몇몇 스토리 적 장치에서 엿본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역행이란 '수유천'과 같은 물줄기의 흐름, 어떤 일의 정(正)의 방향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그와 대립한 자리에 놓인 안정감과 유대감의 장면들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당신얼굴 앞에서>(2021)를 떠올리게 했다.
02.
영화는 하천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대학교수 전임(김민희 분)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이 장면은 영화에서 총 세 번(인물이 없는 냇가의 모습까지 포함하면 네 번) 등장한다. 그가 곧 만나게 되는 사람은 강릉에서 책방을 하며 지내고 있는 외삼촌 시언(권해효 분)이다. 열흘 뒤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학생들의 촌극(아주 짧은 단편극)의 완성을 부탁하기 위해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시언은 오래전 연극배우이자 극단의 연출자로 유명했으나 억울한 사건에 휘말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 영화 <수유천> 스틸컷 |
ⓒ (주)영화제작전원사 |
홍상수 감독의 많은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에서도 인물들의 사건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의 처음에서 왜 하천 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등장하는지, 그 장면은 왜 반복해서 등장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중반부 이후 몇 차례 등장하는 밤하늘의 달을 포착하는 장면이나 전임이 술자리를 떠나 학교로 돌아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커다란 낙엽과의 호흡이 담긴 신을 주목해 봐야 한다. 이 장면들은 모두 정(正)의 방향이나 위치에 속한다.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거나 순행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모양을 갖게 된 것. 인간의 표현으로 대신하자면, 그 공간이나 시간에 놓여 있을 때 안정감을 얻을 수 있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으며 역(逆)의 위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상이다.
그 역(逆)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상황을 통해 제시된다. 과거 특정 무리에 의해 예술계에서 매장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 시언의 과거 상황이 그렇고, 자신이 맡은 연극에 물의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나타나서 사람을 좋아한 게 잘못은 아니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연출 준원의 태도가 또 그렇다. 학교의 촌극을 좋지 못한 일로 퇴출당한 시언에게 맡겼다는 이유로 정 교수와 전임을 호출하는 총장의 모습도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전임과 시언 두 사람 사이의 사연도 마찬가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의 모습과는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을 통해 홍상수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正)과 역(逆)의 이분법적 구분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일방적인 피해자처럼 그려지던 시언 역시 과거 자신이 실수했던 바가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고, 연출 준원에 의해 거짓된 사랑의 피해자가 된 세 학생 중 하나인 지수는 다시 찾아온 그의 고백 앞에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줄 모른다. 작품 속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반합'의 과정에 놓여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과거를 딛고 성장해 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처럼 다가온다.
04.
나머지 네 학생과 시언이 함께 준비한 촌극이 무대에서 선보여진 뒤 이어진 뒤풀이 장소의 장면은 같은 맥락에서 찍힌 온점과도 같다. 시를 지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시언의 제안에 네 학생은 한 명씩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네 학생이 말하는 이상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영화의 표현을 빌려 이들을 '강'이나 '하천'으로 비유하자면, 아직 세상을 향해 제대로 흘러가기 이전의 수원(水源)과도 같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반대의 방향으로 역행하는 일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모습까지도 모두 하나의 흐름처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의 모습이다.
▲ 영화 <수유천> 스틸컷 |
ⓒ (주)영화제작전원사 |
전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야기해야겠다.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이기도 한 그는 애초에 정(正)과 역(逆)의 지점을 모두 안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외삼촌인 시언을 대할 때 그 모습은 더 두드러진다. 어떤 때에는 그의 인정을 얻어내고 싶어 하는 듯하면서도 또 어떤 장면에서는 그의 행동으로부터 흠결을 찾아내려는 듯한 모순적인 태도다. 정 교수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부분 또한 불편한 관계에 대한 경계가 아닌 외도의 가능성에 대한 주의라는 것이 극의 마지막에서 밝혀진다.
그의 작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이는 찾아볼 수 있다. 하천 변에서 작은 팔레트로 조금씩 그림을 채워가는 모습이나 한 시간에 겨우 10cm 정도 완성이 가능하다는 베틀 작업에는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순리에 맞게 제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마치 계절이 돌아 나온 뒤에야 낙엽을 만질 수 있고,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달이 차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시리즈 작업은 한강으로부터 수원까지, 하류로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콘셉트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도 역시 두 개념이 함께 결합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06.
"너하고 나, 이제 좀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전임과 시언이 과거를 봉합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러닝타임 전부를 쏟아부어 순행과 역행이, 정(正)과 반(反), 역(逆)이 함께라고 이야기했으면서 다시 자연스러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놓였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발을 딛지 않은 순진한 학생들의 모습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모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이고 악의적인 범죄가 아니고서야 당시의 행동이 순리를 따르는 것인지 거스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 인간이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것 또한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 <수유천>에는 지금 흘러가는 것들이 모두 그려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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