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 현실로... 축구팬이라면 꼭 보세요
[김성호 기자]
드라마는 무엇인가. 기술적으론 극, 희극과 비극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형태적으로는 영화와 달리 연속극의 형식을 가진 다회차 영상콘텐츠를 드라마라고 칭한다. 때에 따라 장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액션이 깨고 부수는 것이고 공포가 놀라고 졸아들게 하는 것이라면 드라마는 인간의 이야기라 하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상 연출자였던 알프레드 히치콕은 드라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
직역하면 '지루한 대목을 들어낸 삶', 그것이 드라마라는 이야기다. 삶은 삶이되 지루하지 않은 것, 즉 볼만한 인생 이야기가 드라마란 뜻이겠다.
▲ 테드 래소 포스터 |
ⓒ 애플TV+ |
<테드 래소>는 근 5여 년 간 세상에 나온 드라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작품 중 하나다. 2020년 시즌1으로 출발해 지난해 시즌3이 종영된 이 작품은 미국 TV프로그램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에미상을 휩쓸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애플TV+가 출범한 직후 야심차게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이며, 현재까지도 해당 OTT 서비스의 인기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의 훌륭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하는가.
아마도 히치콕의 답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 테다. 지루한 대목을 들어낸 삶, 그 본질을 이 작품이 놓치지 않고 있다는 뜻이겠다.
<테드 래소>는 기본적으로 스포츠 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축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택했다. 주인공은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래소, 테드 래소(데니스 수데이키스 분)다. 미국에서 미식축구팀 감독이던 그가 축구팀의 감독, 그것도 영국 프로축구팀의 감독이 되며 겪게 되는 일을 다룬다.
▲ 테드 래소 스틸컷 |
ⓒ 애플TV+ |
래소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위치타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감독으로 활약하며 대학 2부리그 우승까지 이끌었던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소속 AFC리치먼드 감독이 된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작품세계 가운데서 그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축구에는 문외한인 래소를 프리미어리그 클럽 감독으로 앉힌 건 구단주 리베카 웰턴(한나 워딩엄 분)이다. 원래 구단주였던 전 남편이 바람을 피웠단 이유로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구단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그녀는 AFC리치먼드를 망치는 것으로 전 남편에게 복수하겠다 결심한다. 래소를 감독으로 앉힌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극, 그중에서도 드라마에 관심 있는 이라면 비슷한 작품이 떠오를 수 있겠다. 바로 <스토브리그>다. 놀랍게도 <테드 래소>보다 한 발 앞서 만들어진 이신화 작가의 작품으로, 구단 해체를 원하는 구단주가 전혀 다른 종목의 단장을 프로야구팀 수장으로 영입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테드 래소>가 미식축구에서 축구로 옮겨온 감독의 이야기라면, <스토브리그>는 씨름에서 야구로 넘어온 단장의 이야기란 게 다를 뿐, 두 작품 모두 팀 해체를 원하는 구단주를 마침내 감화시키며 팀을 강하게 만들어간단 점에서 유사성이 크다. 두 작품 모두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명작 드라마로 기록됐단 것도 같고 말이다.
▲ 테드 래소 스틸컷 |
ⓒ 애플TV+ |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승리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눈앞의 경쟁보다 중요한 일, 인간 각각이 겪는 변화와 성장을 드라마는 주목한다. 팀은 강등되지만 분명한 변화가 있다. 실패와 해체를 바라던 구단주는 팀에 애정을 갖게 되고, 아무것도 모르던 감독은 축구의 기본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한다. 응집력 없던 팀이 조금씩 진짜 팀으로 거듭난다. 선수와 선수, 감독과 코치, 구단주와 관계자들 사이에 사건이 피어나고 이해가 깊어진다. 서로가 스스로를 직면하고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다.
이 드라마의 훌륭함은 이런 것이다. 등장하는 모두가 결함이 있음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감독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가정사는 파탄 직전이다. 축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공공연한 비아냥과 맞닥뜨린다. 가정을 잃은 구단주는 제 구단을 스스로 망치려 든다. 선수며 코치들도 마찬가지. 열등감으로 가득한 이가 있는가 하면, 부족한 실력으로 고심하는 이가 있고, 이기적인 이와 속 좁은 이,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와 돈만 밝히는 이가 공존한다. 누구 하나 완전하다거나 결함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축구팀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흠 많고 깨어지기 쉬운 위태로운 무엇이다.
▲ 테드 래소 스틸컷 |
ⓒ 애플TV+ |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한 발 떨어져 보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저의 부족함을 채우는 존재인가. 사회적 연결을 통하여서 일어서고 자극받으며 발전하는 것인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소통과 사라지는 여유가 개인과 사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 드라마가 일깨우지 않는가.
결국 모든 변화는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다. 테드 래소와 같은 사람 말이다. 그가 없었다면 없었을 모든 일이 그로부터 생겨난다. 래소가 가진 남다른 자질, 그건 바로 이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자세,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을 들여서까지. 그와 같은 자세가 이뤄내는 변화가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바다.
그로부터 이 모든 이야기의 가장 큰 악당조차 관객에게 이해의 기회를 얻는다. 팀과 감독과 팬과 은인을 배신했던 이가 돌아와 사죄하는 장면은 장장 세 시즌에 걸친 이야기의 멋진 맺음이다. 다른 모든 것에 너그러우면서도 제 아픔만큼은 돌아보지 않았던 그가 마침내 제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순간 또한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한다. 강등되고, 또 우승에 실패해도 작품을 보는 모두가 이들을 패배자로 여기지 않는다.
승자가 아니어도 좋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바로 이것이 <테드 래소>가 근 몇 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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