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붕괴의 시대, 지역언론 기자의 고심
[김성호 기자]
지역이 붕괴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된 인구이동에 더하여 출산율 급감과 도시 산업 유출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대도시인 부산과 대구, 광주에 가서 대중교통만 타 봐도 수도권 외 지역의 노령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서울 또한 나이든 도시로 아이 우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지만 소멸에 당면한 지역에 비할 바 아니다.
젊은 사람이 없고 소비도 이뤄지지 않으니 상권 또한 형성되지 않는다. 당장 물건 파는 곳이 없어 긴급 물품제공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곳까지 생겨날 정도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응급실을 갖춘 거점병원을 비롯해 기초적인 서비스조차 유지하기 버겁다. 다음 반세기가 지난 뒤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이 몇이나 될까 살펴보면 절로 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진다.
지역붕괴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의 산업과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된다는 경고가 지난 반세기 꾸준히 들려왔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 아래 전진, 또 전진, 그야말로 총력전을 펼쳤다. 파이가 충분히 커진 것이 아니냔 외침에도 '더, 더, 더'만을 외쳤다.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수도만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모든 관심은 중앙에 쏠리고 제가 사는 고장의 이야기가 관심 밖으로 벗어난 배경이다.
▲ 믿기자의 고심 책 표지 |
ⓒ 출판공동체 편않 |
<믿기자의 고심>은 '출판공동체 편않'이 언론인의 목소리를 담은 '우리의 자리' 시리즈 다섯 번째 권으로 내놓은 책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제법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갈수록 신뢰를 잃어가는 언론과 저널리즘의 자리를 고심하는 몇 안 되는 프로젝트라 여기기 때문이다. 앞서 읽은 책들로부터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으나, 다음은 보다 나으리라 기대할 때도 잦았다.
믿기자는 스스로 언론인인 동시에 지역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지역기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고. '대충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덧 다가온 대학 졸업과 취업준비생의 현실, 그런 교차로의 굽은 길을 지나 달리다 다다른 곳이 바로 여기'였다고 말한다. 솔직하다 해야 할지 실망스럽다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을 지나 읽어가다 보면 그저 기자의 것과는 다른 고민의 모양이 뭉뚝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의 이야기라면 누군가는 특출난 소명 의식을, 누군가는 숨죽여 들을 수밖에 없는 취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런 기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자리는 반짝거린다. 모두 우러르고 열망한다. (중략) 내 자리는 그렇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언론노동자의 자리일 뿐이다.' - 11, 12p
첫 장은 '시선'을 말한다. 서울에서 제가 살던 지역으로 전학 온 학생이 교사에게 '서울 촌놈'이란 말을 들은 기억을 꺼내어 지방에 깊이 녹아든 열등감을 설명한다. 다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 뒤 서울 출신 동기로부터 '지방 새끼들'이란 표현을 접한 이야기를 꺼내어서 서울과 지방으로 나뉘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그 안에 깃든 혐오와 차별, 무시와 무지로 논의를 진전시키려 한다.
다음은 조금 더 나아가 지역기자로 일하며 겪은 사례가 맛보기처럼 등장한다. 여느 연차 낮은 기자들이 그러하듯, 사건기자로 시작해 기자 경력 상당 부분을 보낸 그다. 특히 다양한 분야가 펼쳐져 있는 서울과 달리 법원과 경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밖에 없는 지역의 특성상 취재할 수 있는 영역이 비좁은 현실이 언급된다.
나아가 지역에서 올린 기사를 전국 취재망을 담당하는 서울에서 확인한 뒤 추가 취재를 요구해오는 상황의 불편 또한 풀어낸다. 서울이 주목하는 지방의 사건기사란 흥미위주의 것들이 대부분이란 사실로부터 그 불합리한 관계맺음을 일깨운다. 그밖에도 제가 쓴 기사에 자주 달리는 댓글들, 그로부터 발견하게 되는 뿌리 깊은 혐오를 이야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언론이 거둔 성취
그렇다고 단점만 나열되는 건 아니다. 주민들의 생활에 밀착해 있는 보도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고 삶을 개선하는 것, 지역언론이 할 수 있는 지역 단위의 소위 '솔루션 저널리즘' 이야기다.
<부산일보>가 2018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해 조사를 이끌어낸 일, 2021년 중금속 범벅인 폐광산에 대하여 조사와 관리를 이뤄낸 것, <강원일보>가 2020년 춘천 민군기지 부실 정화문제를 보도해 조사를 진행하도록 한 일, <CJ헬로 나라방송>이 경기도 양주의 LP가스폭발 사고를 연속보도해 보상을 이끌어낸 건 또한 사례로 제시된다.
두 번째 장 '속사정은'에선 한층 더 소소한 이야기를 짤막한 에세이 형식으로 나열한다. 지자체 홍보담당자가 기자를 겉으로나마 받들어 모시는 상황, 작은 자치단체에 수백 개 언론이 출입을 신청하고 모여드는 민망한 이유, 그 추잡한 현실과 그 근간이 되는 열악한 환경 따위를 차례대로 서술한다.
'기자직 초임 급여를 보자. 전국 종합 일간지는 300만~350만 원을 받는다는 응답이 33.3%로 가장 많다. 반면 지역 종합 일간지는 150만~200만 원이 40.3%로 최다이다. (중략) 지역 종합 일간지의 평균 매출액은 전국지의 3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1인당 평균 매출액으로 가중치를 줘 봐도, 지역지는 전국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 66p
제대로 된 지역언론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과 그에 따른 부실화, 다시 그로부터 지역언론이 지자체며 각종 지역 이권에 영합하기 쉬운 상황에 이르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설명한다.
왜 그들은 언론을 하는가
전반적으로 책은 지역언론사 기자가 보는 지역과 지역언론의 문제를 들춘 글 모음집이다. 지역언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흔히 듣고 보았을 담론이 반복되는 인상이 없지 않지만, 실제 지역언론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이의 글이란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다만 기자로 피부에 닿은 경험을 생생히 써나간 대목이 얼마 되지 않는단 점이 못내 아쉽다. 민감한 대목이나 무리한 비판이 거의 없음에도 제가 일하는 매체와 제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걸린다. 책을 쓴 이가 실제로 어떤 기사를 쓰는지 확인하는 건 책의 진정성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나아가 책의 주제이기도 한 지역기사에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또 아쉬운 건 나름의 대안이다. 앞의 두 장에 걸쳐 지역매체 기자의 삶과 한계를 언급한 책이 세 번째 장에선 급작스럽게 문법과 맞춤법 등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때문이다. 대주제라 할 수 있는 혐오와 차별, 지역발 기사를 바라보는 뒤틀린 시각, 지역언론의 어려움 등과 치열하게 맞서본 생생한 경험, 나아가 현직자로 느끼는 대안 등을 적어나갔다면 읽는 이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지 않았을까.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터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믿기자의 고심>은 언론과 지역을 생각하는 이에게 필요한 책이다. 지방이 무너지고 언론 또한 무력한 현실 가운데서 가장 먼저 그 폐해와 맞서야 할 곳이 역시 지역언론인 때문이다. 지역언론에서 일하는 기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떤 문제를 겪는지를 아직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이 그 답이 되어줄 수 있겠다. 그로부터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기획한 이들이 기대한 건 아마도 그와 같은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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