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핑계로 남에게 죄 뒤집어씌운 몹쓸 아버지들
[윤일희 기자]
요즘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는 드라마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에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버리는 '몹쓸 아버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 아버지들이 정말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자식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관련 이미지 |
ⓒ MBC |
정우가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거나 삼촌이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이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정우를 제물 삼았다.
마을에서 가장 잘사는 정우 부모와 학교 스타 정우가 제물의 표적이 된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꿈틀대는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정우 부모가 해외여행을 간 공백은 일사분란한 범죄 조작의 시공간을 내주고, 가장 잘 나가는 가족이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는 마을 사람들은 이웃사촌이 땅을 늘리며 앓았던 배앓이를 일거에 해소한다.
정우는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였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준수한 외모와 인성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고, 게다 부유한 부모가 든든한 뒷배이고 보면 거의 완벽한 '워너비'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모두가 선망한다는 의미를 뒤집으면 스타가 정상의 자리에서 추락하는 것이 보고 싶다는 시기심이 나온다.
정우라는 우상의 옆에 있는 친구들은 종종 "따까리"로 불리며 열등감을 키운다. 그날 정우의 친구이자 보영의 친구였던 병무(이태구)는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였던 보영(장하은)을 성폭행한다. 성폭력의 공식처럼 일컬어지는 야한 옷차림이나 성적인 틈새 때문이 아니라, 남자의 열등감을 누설했기에 성폭행을 당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범죄자 유형이 여자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 강간과 살해를 저지른 범행과 유사한 맥락의 '미소지니(여성혐오)'와 '페미사이드'였다.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관련 이미지 |
ⓒ MBC |
정우를 죽이려고 나타난 동민에게선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심이 엿보이지 않는다. 살기등등한 그에게서는 자신의 소유물을 함부로 훼손시킨 침해에 대한 앙심이 있을 뿐이다. 딸의 살인자를 처단함으로써 그가 풀려나고 싶었던 것은 잃어버린 딸을 돌이킬 수 없는 현실 대한 한이 아니다. 정우가 그가 겨눈 총구 앞에서 "그때(보영이 죽을 때) 아저씨는 뭐했느냐"고 놓은 일침처럼, 그저 자신의 부끄러운 부성의 부재를 황급히 지우고자 함이었다.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딸을 사랑해보지 못한 아버지는 딸의 애도에도 무참히 무능했다.
카메라 들이대는 '거대한 정의'가 무섭다
보영 살인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즈음 하나씩 봉인이 풀리는 다은(한소은)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드라마를 더 보기가 참담할 정도로 망한 공동체의 실체를 드러낸다. 가해의 무감각과 망각, 피해에 대한 인정과 성찰의 부재, 오직 출세와 정치적 이득을 위한 공모와 권모술수, 내가 사는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만 우리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의 이기심이 적나라하다.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관련 이미지 |
ⓒ MBC |
영화 <베테랑>에서 시민들은 목전에 벌어지는 폭력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휴대폰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10여 년이 지나 < 베테랑 2 >에선 휴대폰으로 촬영하던 시민들이 너도 나도 정의를 고발한다는 유튜버가 돼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가해와 피해에 대한 공동감각은 오직 대리되고 중계되는 SNS에서만 효용을 발휘할 뿐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실재하는 폭력과 피해에는 철저히 눈감고 말이다.
▲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관련 이미지 |
ⓒ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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