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용산의 언어, 시민의 언어

김효진 2024. 9. 2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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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만나서 대화한다고 소통 잘 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대화가 너무 적다는 것만으로 불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언어가 같으면, 즉 그의 세계관이 상대의 그것과 일치하거나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쩌다 한 번 나누는 대화로도 소통이 가능할 수 있고 그 반대라면 하루에 몇 번씩 만나 말을 섞어도 공명(共鳴)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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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만나서 대화한다고 소통 잘 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대화가 너무 적다는 것만으로 불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문제는 그가 상대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느냐다. 언어가 같으면, 즉 그의 세계관이 상대의 그것과 일치하거나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쩌다 한 번 나누는 대화로도 소통이 가능할 수 있고 그 반대라면 하루에 몇 번씩 만나 말을 섞어도 공명(共鳴)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국 사람이랑 프랑스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서로를 향해 온종일 떠들어댄들 소통다운 소통이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가 명품가방 건네받은 사실을 둘러싼 지난하고 짜증스러운 정쟁의 배경에도 이런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영부인이 정체 모를 누군가로부터 사사롭게 금품을 건네받는 음습한 장면을 목도하리라고 보통의 시민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게 죄가 아니면 뭐가 죄란 말이냐’, ‘암만 그래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니잖으냐’라는 게 그나마 단정하게 번역된 ‘시민 일반어’다.

대통령 부부는 ‘적절치 않았지만 함정취재·정치공작에 이용된 것에 불과하다’거나 ‘거대야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펴는 공세에 휘둘릴 수 없다‘는 식의 ‘용산 특수어’를 꿋꿋하게 구사하고 있다. 직무 관련성, 배우자 가벌성 등 아리송한 법 논리가 그들의 언어에 지배적으로 자리하고 있음은 어렵잖게 짐작된다. 그래서 그 언어는 ‘법이라는 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법을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레토릭이자 올려다보기보다는 굽어보는 성격이 짙은 ‘서초동 세계관’의 발로로 읽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임기 말이 아님에도 30% 이쪽저쪽에 단단히 갇힌 지지율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소통을 가로막는 언어와 세계관의 괴리를 웅변한다. 의대증원같이 인기는 갉아먹겠지만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데 따른 대가로 해석하기에는 저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법이 시작되기 이전, 법이 끝난 이후에 정치가 작동한다고 하지 않는가. 서초동식으로 다 된다면 나랏일을 전부 쟁송과 내용증명으로 처리하면 된다. 최고위 정무직이자 정치인인 대통령이 ‘법대로’에 매몰됐다가 여러 사람 불행해진 사례는 흔하다.

검찰과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은 김 여사를 사법적으로 의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재영씨에 대한 수심위에서 '기소 권고'가 의결된 걸 단초로 검찰이 다른 결단을 하지 않는 한 이 건으로 김 여사가 법정에 설 가능성은 일단 사라진다. 중요한 건 대통령 부부가 이것으로 사안이 종결됐다고 ‘법대로’식 판단을 내리는지 여부인데, 공교로운 시점에 자못 당당하게 경찰관들 데리고 마포대교를 거니는 김 여사의 모습은 그렇게 판단한 듯한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하다. 채상병 특별검사법을 포함해 대통령을 옥죄는 대부분 이슈의 본질도 이 지점이 아닐까 한다.

상응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반성과 사과의 제스처, 영부인의 행보를 제도화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 등은 결코 사치스럽지 않고 정치공세에 물러서는 것도 아니다. 야당이 정말로 무도해서 논란을 키운 것이라고 해도 온 나라가 기억하는 ‘그 장면’은 삭제되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의 태도는 바뀔 것인가. 가뜩이나 사람은 잘 안 바뀌는데 둘이서 따로 얘기하자는 여당 대표의 요구를 거절한 걸 보면 난망하다. 특검발의-단독통과-재의요구-정치실종 식의 고구마 씹어 먹는 듯한 정국도 풀리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나보다. '그래도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지!'

김효진 전략기획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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