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인 성인가요] 가수 훈남의 눈물 어린 고생담 ‘파란만장’
김은구 2024. 9. 25. 05:30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부른 트로트 발라드
테니스 코치하다 무릎 다쳐 요식업에 투신
자수성가 후 작곡가 김동찬 만나 가수 데뷔
돈 벌러 무작정 상경했다는 한 남자의 곡절 많고 시련 많았던 젊은 시절을 그린 노래가 등장했다. 가수 훈남의 가슴 시린 데뷔곡 ‘파란만장’(김동찬 작사·작곡)이 바로 그 곡이다.
“무작정 서울로 왔다/서둘러 밤차로 왔다/돈 벌러 서울에 왔다/잘살아보려고 왔다”로 시작되는 트롯 발라드. 가수의 목소리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지닌 남자를 ‘훈남’이라고 했던가.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에서도 정감이 넘치는 가수이기에 예명을 그렇게 지었나보다.
점잖은 중년 신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듯 소박하고 담담하게 노래해나간다. 넘어지고 깨지며 힘들 때를 묘사할 때는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열창하면서도 끝까지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남 무안군 청계면 강정리의 농가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정홍식.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 중학생 시절부터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다.
공부가 싫어 테니스부에 들어갔다는데 무안종고에 재학할 때는 전남 대표로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번씩 했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던 셈이다.
운동 말고 노래에도 소질이 없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교사가 음악시간에 경기민요 ‘오봉산타령’을 부르라고 해 불렀더니 100점을 줬다. 이후 학창 시절 내내 100점을 맞은 과목은 하나도 없었다.
고교 3학년 2학기에 홀로 상경해 효창운동장에서 아마추어 정구팀 코치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 경기를 하다가 넘어져 왼쪽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다리를 삔 줄 알았는데 황새관절이라는 곳에 물이 찬 관절염이라고 했다.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다고 해 코치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교육생들에게 함흥냉면을 사주러 갔던 연희동 성산회관이란 곳을 찾아가 냉면요리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냉면 맛이 아주 좋아 그 맛을 잊지 못해 운동 대신 요리를 택했는데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수’가 됐다.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1983년 KBS 공채 탤런트 모집에 응시하기도 했다. 카메라와 대사 테스트를 하려고 그랬는지 면접관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KBS 10기 공채 탤런트 모집에 합격 했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자신에게 들이대니 온몸이 얼어붙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국악을 배운다고 쫓아다니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잠시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입대 전까지 계속 냉면을 배우러 다녔다. 제대 후에도 몇 년 더 배우고 1997년 을지병원 건너편에 있는 호텔 선샤인서울 옆 골목에 강남면옥을 개업했다.
행인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불리한 위치여서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심산이었다. 시식회를 열었는데 손님들이 오지 않았다. 결국 노인정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모셔오기도 했다.
좋은 재료만 써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니 입소문만으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결국 성공을 거둬 몇 년 후 청담동 2호점을 거쳐 대치동 3호점 등 계속 직영점을 늘렸다. 나중에는 직영에 어려움이 많아 운영 방식을 프렌차이즈로 바꾸고 재료만 공급하며 운영하고 있다.
요식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라이브카페를 찾아가 나훈아의 히트곡들을 즐겨 부르곤 했다. 무릎 관절염은 한강서 20년간 자전거를 타며 극복을 했다. 한강공원에서 자주 열리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저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곡가 김동찬 선생을 한 교육원에서 소개를 받아 친해졌다. 피아노가 필요하다기에 낙원상가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는 후배를 통해 피아노를 사드렸더니 “소리가 너무 좋다”면서 좋아하셨다.
피아노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친 김에 자신이 맨몸으로 상경해 고생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동찬 선생도 맨몸으로 상경해 고생한 일을 생각하며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며 ‘파란만장’을 작사 작곡해 취입을 하게 됐다. 김동찬 선생이 ‘훈남 정홍식’이란 이름을 쓰자고 제안했지만, 부인이 본명은 빼고 쓰자고 해 예명을 ‘훈남’으로 정했다.
석광인 대기자
전 스포츠조선 연예부장
전 예당미디어 대표
현 차트코리아 편집인
테니스 코치하다 무릎 다쳐 요식업에 투신
자수성가 후 작곡가 김동찬 만나 가수 데뷔
돈 벌러 무작정 상경했다는 한 남자의 곡절 많고 시련 많았던 젊은 시절을 그린 노래가 등장했다. 가수 훈남의 가슴 시린 데뷔곡 ‘파란만장’(김동찬 작사·작곡)이 바로 그 곡이다.
“무작정 서울로 왔다/서둘러 밤차로 왔다/돈 벌러 서울에 왔다/잘살아보려고 왔다”로 시작되는 트롯 발라드. 가수의 목소리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지닌 남자를 ‘훈남’이라고 했던가.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에서도 정감이 넘치는 가수이기에 예명을 그렇게 지었나보다.
점잖은 중년 신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듯 소박하고 담담하게 노래해나간다. 넘어지고 깨지며 힘들 때를 묘사할 때는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열창하면서도 끝까지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남 무안군 청계면 강정리의 농가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정홍식.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 중학생 시절부터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다.
공부가 싫어 테니스부에 들어갔다는데 무안종고에 재학할 때는 전남 대표로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번씩 했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던 셈이다.
운동 말고 노래에도 소질이 없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교사가 음악시간에 경기민요 ‘오봉산타령’을 부르라고 해 불렀더니 100점을 줬다. 이후 학창 시절 내내 100점을 맞은 과목은 하나도 없었다.
고교 3학년 2학기에 홀로 상경해 효창운동장에서 아마추어 정구팀 코치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 경기를 하다가 넘어져 왼쪽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다리를 삔 줄 알았는데 황새관절이라는 곳에 물이 찬 관절염이라고 했다.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다고 해 코치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교육생들에게 함흥냉면을 사주러 갔던 연희동 성산회관이란 곳을 찾아가 냉면요리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냉면 맛이 아주 좋아 그 맛을 잊지 못해 운동 대신 요리를 택했는데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수’가 됐다.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1983년 KBS 공채 탤런트 모집에 응시하기도 했다. 카메라와 대사 테스트를 하려고 그랬는지 면접관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KBS 10기 공채 탤런트 모집에 합격 했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자신에게 들이대니 온몸이 얼어붙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국악을 배운다고 쫓아다니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잠시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입대 전까지 계속 냉면을 배우러 다녔다. 제대 후에도 몇 년 더 배우고 1997년 을지병원 건너편에 있는 호텔 선샤인서울 옆 골목에 강남면옥을 개업했다.
행인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불리한 위치여서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심산이었다. 시식회를 열었는데 손님들이 오지 않았다. 결국 노인정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모셔오기도 했다.
좋은 재료만 써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니 입소문만으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결국 성공을 거둬 몇 년 후 청담동 2호점을 거쳐 대치동 3호점 등 계속 직영점을 늘렸다. 나중에는 직영에 어려움이 많아 운영 방식을 프렌차이즈로 바꾸고 재료만 공급하며 운영하고 있다.
요식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라이브카페를 찾아가 나훈아의 히트곡들을 즐겨 부르곤 했다. 무릎 관절염은 한강서 20년간 자전거를 타며 극복을 했다. 한강공원에서 자주 열리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저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곡가 김동찬 선생을 한 교육원에서 소개를 받아 친해졌다. 피아노가 필요하다기에 낙원상가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는 후배를 통해 피아노를 사드렸더니 “소리가 너무 좋다”면서 좋아하셨다.
피아노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친 김에 자신이 맨몸으로 상경해 고생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동찬 선생도 맨몸으로 상경해 고생한 일을 생각하며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며 ‘파란만장’을 작사 작곡해 취입을 하게 됐다. 김동찬 선생이 ‘훈남 정홍식’이란 이름을 쓰자고 제안했지만, 부인이 본명은 빼고 쓰자고 해 예명을 ‘훈남’으로 정했다.
석광인 대기자
전 스포츠조선 연예부장
전 예당미디어 대표
현 차트코리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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