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편파수사 막겠다며 '법 왜곡죄' 추진…與 "검찰 겁박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구형(지난 20일)한 뒤 이른바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 도입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안을 상정하며 추진 드라이브를 걸었고, 국민의힘은 “명심(明心, 이재명 의중)에 따라 보복을 행하고 있다”(24일, 추경호 원내대표)며 반발했다.
법 왜곡죄는 대장동 변호사 출신 이건태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것으로, ‘검사 등 수사업무 종사자가 직무 수행에 있어 법을 왜곡한 때에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의원은 “검찰이 편파적인 수사·기소를 자행하고 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검찰 겁박용”(곽규택 의원)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법 왜곡죄는 1980년대 일부 학계에서 논의되다 20대 국회 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 불신이 고조되는 실정으로 판·검사 처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처음 입법안으로 냈다. 21대 국회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부 관계자 수사로 여권(현 야권)과 마찰을 빚던 때에도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재차 발의한 적 있다. 둘 다 임기 만료 폐기됐다.
법안은 발의 때마다 논란을 불렀으나, 발의한 민주당은 “법 왜곡죄는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김용민 의원)며 해외 사례를 근거로 댔다. 실제 세계적으로 보면 법 왜곡죄는 고대 이집트와 로마에서도 발견되고 오늘날에도 여러 국가가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에도 ‘부당한 판결·판정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형법 282조)는 유사 규정이 있다.
논쟁은 해외 입법례가 정책 도입의 핵심 근거가 될 수 있느냐다. 이 의원 법안을 비롯해 국내에 발의된 법안은 모두 독일 형법을 모델로 했다. ‘법관, 기타 공무원 등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법률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독일 형법 339조)는 내용이다. 1851년 프로이센 형법 제314조가 직접적인 원류다.
이진국 아주대 로스쿨 교수가 2019년 4월 한국비교형사법학회 학술지 『비교형사법연구』에 낸 논문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의 구성요건과 적용」
에 따르면 독일의 법 왜곡죄는 “독일의 굴곡진 역사에 상응하게 지금까지 나치 시절 사법 불법과 구(舊) 동독 사법 불법 등 크게 두 국면에 걸쳐 적용됐다”고 한다. 제정 초기엔 법 적용이 매우 드물었지만, 이후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교수는 “독일에서 법 왜곡죄가 의미를 가진 건 2차 대전(1939~1945년) 이후부터”라며 “나치 시기 불법적 판결에 책임 있는 법관을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서독이 통일(1990년)되자 구 동독 법관·검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며 독일 학자를 인용해 “법 왜곡죄 구성요건이 독일 사법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일 연방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2002~2017년까지 법 왜곡죄로 73건의 재판이 이뤄졌고 56건이 유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재판의 대부분은 구 동독 시절의 사법 불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자유형 실형 피고인은 3명(5%)에 불과하지만, 이 교수는 “법 왜곡죄 재판 및 유죄 선고가 결코 적지 않다. 단순히 ‘법전상의 범죄’로만 평가절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므로 바로 적용하기엔 우려스럽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허황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8년 12월 대검찰청 학술지 『형사법의신동향』에 낸 논문
「독일의 검사에 의한 법 왜곡죄」
에서 “한국의 특수성은 독일식 법 왜곡죄를 그대로 수입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며 그 이유를 주장했다.
우선 기소법정주의(법적 조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기소)를 택한 독일과 기소편의주의(검사 재량)를 택한 한국의 차이가 있다. 독일과 달리 한국 검사의 기소 또는 불기소는 그 처분이 정당한지를 구분할 객관적 기준이 확실하지 않다. 허 위원은 법 왜곡죄를 적용하려면 “기소와 관련된 검사의 재량이 ‘0’으로 수축되는 영역이 어디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조화할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컨대 “검사가 수사에서 배제된다면, 수사단계에서 검사에 의한 법 왜곡죄는 논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허 위원은 “검찰 권한을 유지해 강력하게 책임을 묻든지, 경찰에 양보하든지 양자택일의 문제”라며 “수사권 조정과 법 왜곡죄는 같이 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9년 6월 발행한 연구 총서 『형사사법 분야의 법 왜곡 방지를 위한 입법정책』에서도 “독일식 법을 도입할 경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자, 특히 독재자 관점에서는 ‘법과 다르다’는 매우 간단한 기준만으로 법관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법 왜곡죄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면서 “법 왜곡죄는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추진 법안에 대한 국회의 우려도 있다. 이건태 의원 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개정안 입법 취지는 인정된다”면서도 “직무유기·직권남용 등 현행법상 다른 범죄와의 관계가 문제된다”고 지적했다. 또 “법 적용 왜곡 여부는 관점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한국엔 이미 판·검사를 처벌할 직권남용죄가 있는 등 독일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게다가 법 왜곡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지, 또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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