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고향’서 펜실베이니아 승패 갈린다

임성수 2024. 9. 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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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격전지를 가다] ① 펜실베이니아의 풍향계 스크랜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노스워싱턴대로 주택가. 스크랜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향으로, 노스워싱턴대로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년 시절을 보낸 주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하지만 온종일 가을비가 흩뿌린 탓인지 방문객은커녕 인적조차 드물었다. 이웃집 남성은 “여기가 바이든의 옛집”이라고 알려주면서도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주택 앞에 세워진 작은 팻말을 보고서야 바이든이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팻말에는 ‘이 집에서부터 백악관으로, 신의 은총과 함께’라고 쓴 바이든의 친필 사인 사진이 담겨 있었다.

인접한 곳에 사는 백인 여성 캐럴(89)은 “이 동네는 대부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며 주변 주택 앞마당에 꽂혀 있는 카멀라 해리스 지지 팻말을 가리켰다. 실제로 이 동네에는 해리스와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팀 월즈 지지 팻말이 꽂혀 있는 집이 많았다.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은 배경에는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를 휩쓸었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이 바이든의 승리 확정 속보를 내보낸 시점도 펜실베이니아 승리가 결정된 직후였다.

스크랜턴은 펜실베이니아의 민심을 읽을 수 있는 풍향계 같은 곳이다. 인구가 7만5000여명에 불과한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소도시이지만, 중산층과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이 혼재해 있어 펜실베이니아가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지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다. 스크랜턴에서의 승부가 펜실베이니아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셈이다. 스크랜턴은 한때 철강, 철도 산업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소도시로 쇠락했다. 스크랜턴이 속한 라카와나 카운티도 민주당의 텃밭이었지만 점차 공화당의 득표력이 올라가고 있다. 이날 만난 유권자들도 대부분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표가 가진 위력에 대해 실감하는 눈치였다.

캐럴은 “나는 해리스를 좋아한다. 그녀는 조(바이든 대통령)와 함께 일해 왔다. 그녀는 검사 출신이고 정말 잘해 왔다”며 “바이든을 대신할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면 해리스를 선택하겠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에 관한 한 트럼프가 낫다고 하지만 해리스가 경제에서도 (트럼프를) 따라잡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미국을 한 번 운영해 봤고 그걸로 충분하다. 그는 그냥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는 모습. AP연합뉴스


스크랜턴엔 가는 곳마다 바이든의 이름을 딴 도로들이 눈에 띄었다. 바이든이 고령 논란 탓에 결국 후보에서 사퇴했지만, 스크랜턴에서만큼은 이곳 출신의 노조 친화적 대통령이라며 그를 좋아하는 유권자가 많다. 바이든이 ‘횃불’을 넘겨준 해리스를 지지하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데이브 에번스(57)는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확정하지 못했지만 해리스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다”며 “해리스는 바이든만큼 노조를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130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대형 운수노조 ‘팀스터스’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팀스터스가 민주당의 우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해리스에게 타격을 주는 소식이다. 자신을 ‘스크랜턴 조’라 부르며 펜실베이니아 블루칼라 노동자의 친구를 자임해온 바이든과 달리 캘리포니아 출신 해리스는 이곳 주민들에게 다소 낯선 정치인이다.

에번스도 “노조에서도 해리스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가 양분돼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어야 하는데 트럼프는 독재를 하려고 할 수도 있다”면서 “결국은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젊은 유권자들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스크랜턴에 있는 메리우드대학교에서 만난 20대 유색인종 여성 노리는 “우리 정부가 여성 대통령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 대통령을 갖는 게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수인종 여성도 백인 남성만큼이나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판을 뒤흔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함께 인터뷰에 응한 백인 여성 세라는 “트럼프보다 해리스의 시각이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해리스가 젊은층 표 덕택에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사실 두 사람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크랜턴에서도 바이든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편의점 앞에서 비를 피하던 맥 맥도너(52)는 “펜실베이니아도 불법 이민자 문제가 심각하다. 내가 범죄를 저지르면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불법 이민자들은 성역에 있는 것 같다”며 “평생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에는 바이든이 중도적이라서 그를 찍었지만 그는 버락 오바마나 낸시 펠로시처럼 좌파로 갔다”며 “해리스는 더 좌파이기 때문에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스크랜턴 도심에서 외곽으로 벗어나자 훨씬 많은 주택이 트럼프 지지 팻말을 세워두고 있었다. 고학력 엘리트에게 반감을 느끼는 백인 블루칼라의 마음을 해리스가 헤아리지 못한다면 ‘제2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클린턴은 2016년 대선 때 펜실베이니아를 트럼프에게 내줬고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스크랜턴(펜실베이니아)=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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