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블랙리스트 만든 의사에게 모금운동…국민은 안중에 없나
피해자 아닌 가해자 위해 모금, 독립투사 비유까지
선민의식·우월감에 안하무인으론 국민 지지 못 얻어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위해 일부 의사가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동료를 괴롭힌 사람을 영웅시하며 거액을 송금한 의사도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해 모금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사직 전공의 정모씨는 병원을 지키는 전공의와 수업에 복귀한 의대생들의 실명과 소속 병원, 연차 등을 적시한 명부를 만들어 의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의 게시물은 명백한 조롱이자 의사 집단 내에서 조리돌림당하라는 악의가 담겼다. 이름이 공개된 전공의들은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어렵고, SNS나 문자를 통해 조롱과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전공의들은 처음부터 사직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인적 결심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병원에 남겠다는 개인적 결단도 존중해야 마땅하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단체행동의 파괴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뿐이다. 이탈자 때문에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이기심까지 엿보인다.
경찰은 정씨에게 스토커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발부했다. 지속해서 개인정보를 전송·게시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그런데도 일부 의사들은 자제를 촉구하는 게 아니라 범죄자를 두둔하고 나섰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정씨를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언급했다. 정씨를 잔다르크나 독립영웅에 비유하는 의사도 있다. 경기도의사회는 블랙리스트가 표현의 자유라며 “전공의 구속은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했다. 적반하장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생명이 위독해지거나 삶을 마치는 사례가 속출한다. 그나마 병원에 남은 전공의와 교수들의 헌신 덕에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이 기댈 마지막 언덕마저 없애겠다는 일부 의사의 이기심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의사들이 보여온 이 같은 행태에는 자신들이 특권층이라는 선민의식과 우월감만이 짙게 배어 있다.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7개월 동안 2000명 증원 정책의 허점이 속속 드러났다. 의대 증원 여론도 90%에 가까운 찬성에서 과반이 잘못하고 있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돌출하는 일부 의사들의 과격 발언과 안하무인 행태는 이 같은 차분한 성찰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정부와 격렬히 충돌하고 있는 의사들이 주장을 관철하려면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필수다. 선민의식을 거두고 국민 감정과 정서를 고려하며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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