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빚으로 지은 집
8월 서울 아파트값이 약 6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고, 가계부채가 폭증했다는 뉴스가 화제다. 조금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2022년 10월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 우려가, 같은 해 12월에는 깡통주택을 수천채 보유한 ‘빌라 왕’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전국적 뉴스였다. 언뜻 달라 보이는 세 가지 이슈는 주택금융이라는 한 단어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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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값 폭등과 가계부채 폭증
그 근원에는 전세와 선분양 제도
작은 자본으로 막대한 이익 가능
제도 개선으로 레버리지 낮춰야
」
주택금융은 주택의 개발, 매입, 임대차, 투자 등을 위한 자금을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주택을 구입할 때 소비자가 받는 주택담보대출, 주택을 건설할 때 개발사업자가 받는 PF대출이 대표적인 주택금융 상품이다. 한국의 주택금융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세와 선분양을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두 가지 제도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선진국은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 초기에 정부의 재정과 제도권 금융의 대출은 수출주도 성장을 위해 기업에 집중되었다. 주택금융을 발전시킬 여력이 없었다.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집값의 상당 부분이 되는 보증금을 맡기고, 일정 기간 거주하는 계약이다. 전세의 실질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 전세는 집주인에게 주택구매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선분양제도는 1978년 5월 10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도입되었다. 주택사업 주체가 주택이 건설되는 토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공사 착수 이후 연대보증이나 분양보증사를 통한 보증이 있을 경우 선분양을 통해 주택가격의 80%를 대금으로 미리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선분양의 실질은 수분양자가 건설사에 건축비용을 조달해주는 것이다. 재정지원이 극히 한정된 상태에서 민간자금으로 주택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다.
정리해보면 전세와 선분양 모두 제도권 금융의 대출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택시장 참여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사적 금융 역할을 담당했다. 제도권 금융의 신용공급이 없었음에도 1970년대 말과 80년대 말 우리는 집값 폭등을 경험했다. 소득증가와 만성적인 주택공급 부족 때문이다. 70년대 말 중동특수로 인한 오일머니의 유입, 80년대 말 3저 호황을 경험한다.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1970년 256만원에서 1990년 1192만원으로 약 5배 늘었다. 서울 인구는 같은 기간 543만명에서 1061만명으로 폭증한다.
주택금융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분양가 규제 폐지, 분양권 전매 허용, 취득·등록세 및 양도세 완화 등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이루어진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제한하던 여신운용 규정이 1998년 1월 개정되어 대출이 자율화되었고, 신탁업법 개정으로 은행에서도 부동산 신탁상품이 출시된다.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부동산투자회사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이 제정되어 본격적으로 제도권 금융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기반이 마련됐다.
2000년 이후 금융기관이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에 주력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급격히 증가한다. 한국은행 가계신용에 따르면 1998년 가계대출은 165조원, 주택담보대출은 44조원 수준에서 2023년 각각 1768조원, 1064조원으로 증가했다. 25년 동안 가계대출은 약 10배, 주택담보대출은 약 24배가 늘었다는 뜻이다. 또한 전세보증이 출시되기 전에 미미하던 전세대출 규모는 현재 5대 시중은행 기준 118조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명목 GDP는 4.5배 증가했다.
개발금융에서도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외환위기 이전 건설사가 토지를 보유·시공하던 관행이 기업 부채비율 개선과 기업경영 투명성 강화 조치로 바뀌면서 건설사가 토지 작업을 담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시행사가 토지매입과 인허가를, 시공사는 건설과 책임준공을, 금융권은 신용보강과 대출을 각각 담당하게 된다. 시행사는 전체 사업비의 3% 정도의 자본금으로도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데, 선분양을 통해 대부분의 건축비용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권의 PF익스포저는 2008년 말 76.5조원에서 2022년 6월 141조원으로 증가했다. 새마을금고까지 포함한 규모는 현재 230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까지 저금리의 장기화로 제도권 신용이 주택담보대출, PF, 심지어 전세금에까지 급격히 공급되었다. 전세와 선분양제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갭투자자와 시행사는 레버리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가히 빚으로 지어 올린 집이라 할 수 있다. 주택가격 상승기엔 갭투자자와 시행사는 작은 자본으로 막대한 이익을 본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빌라 왕’과 부실 부동산 PF가 된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낮추고, 전세보증을 줄여나가고,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서 주택시장의 레버리지를 낮출 필요가 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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