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텍스트힙의 두 얼굴

2024. 9. 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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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규 소설가·목사

Z세대 공유한 역동적 글쓰기
긍정론과 부정론 논란 거세도
텍스트는 소통 위한 일상일 뿐

텍스트힙(Text-Hip)이란 용어가 화제다. 분명 화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10대, 20대를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유행이며 속칭 Z세대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문화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텍스트(Text)와 힙(Hip)의 합성어로 SNS가 일상화된 Z세대 사이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흔적을 SNS를 통해 역동적으로 공유하는 광범위한 글쓰기 활동을 뜻하며 그 역동적 행위를 힙하고 심지어 섹시하다고 보는 유행에서 비롯된 말이다. 힙하게, 곧 유행의 첨단에 선 것처럼 보여주는 일종의 글쓰기 전시 행위인 셈이다.

기성세대는 이 글쓰기 문화를 접하자마자 유사해 보이는 행위로 일기나 메모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기와 텍스트힙은 일단 공개 범위에서부터 다르다. 일기는 개인의 은밀한 기록을 기반으로 하기에 비공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텍스트힙은 실시간 공유를 원칙으로 한다. 비공개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일기처럼 기본 근거가 비공개는 아니다. SNS를 통해 지인, 혹은 익명의 누군가와도 자유롭게 소통한다. 그렇다면 메모와 유사한 것일까. 비슷하지만 이것도 차이가 있다. 텍스트힙은 공감대 형성을 글쓰기의 주요 목적으로 삼기에 주로 유명한 현자의 격언, 기성 작가들의 기억에 남는 한마디, 시의 한 구절 등을 소개한다. 직접 소개하기도 하고, 연쇄적 반응으로 공감을 끌어내며 소통하기도 한다. 텍스트힙은 은밀하면서도 공개적이며 단순한 정보 전달만이 아닌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연대효과를 지향한다.

이렇듯 하나의 글쓰기 문화로 자리 잡은 텍스트힙에 비판적 시각과 긍정적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긍정적 시각은 가뜩이나 문해력 저하를 염려하는 어린 세대를 향해 기록과 문자의 소중함과 유용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건강한 독서문화 정착의 유인효과로 보는 견해다. 비판적 시각 역시 만만치 않다. 텍스트힙이 오히려 문자 매체의 파편화를 가속화해 Z세대를 비롯해 한국 독서 시장 전체의 후퇴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텍스트힙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비교적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지만 이 경우 하나의 문화 현상에 관한 전제가 선행돼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두 개의 반대되는 시각은 문화 현상으로 나타난 상황에 관한 후속적 평가일 뿐 글쓰기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는 유행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현실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는데, 텍스트힙 현상에는 두 얼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얼굴은 텍스트, 곧 글쓰기 문화가 가져온 기록에 관한 관심, 그 기대와 확인의 반복이다. 인간이 가진 본성으로서의 글쓰기, 정보 전달 이상의 감흥이 담긴 책과 문헌, 그 흔적을 읽고 공감하고 나누려는 텍스트의 긍정이 다변화하는 매체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텍스트힙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또 다른 얼굴 또한 만만찮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건 최근 떠도는 유행어 ‘있어빌리티’처럼 실제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마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을 말하는 현상 이면에 자리 잡은 텍스트의 환상에 관한 것이다. 텍스트의 환상이란 자칫 미문(美文)처럼 보이는 글, 곧 문학이 보이는 상위계급의 고급문화처럼 소비되는 걸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는 분명 환상이다. 텍스트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고급 취미활동도 아니고, 한때의 유행도 아니기에 그렇다. 텍스트는 우리의 일상이다. 텍스트는 우리가 살고, 숨 쉬고, 소통하는 기본 요소이지 특수 소비재가 아니다.

텍스트는 힙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유행과 아예 거리를 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텍스트힙을 부정도, 긍정도 아닌 시시각각 달라지는 매체 생태계에서 필연적으로 떠오른 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를 수용함과 동시에 읽기, 쓰기가 가진 글쓰기 문화의 순기능을 촉진하는 다양한 방법론의 모색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주원규 소설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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