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시선] 대한체육회는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1920년 대한체육회 설립 이후 선거인단의 투표에 따라 회장에 선출된 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처음이었다.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엘리트 스포츠와 동호인이 이끄는 생활체육 조직을 통합하면서 2016년 처음으로 2000여 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하는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열렸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은 전문 선수를 기르는 엘리트 스포츠와 일반 시민을 위한 생활체육을 합치는 걸 의미했다. 엘리트 스포츠 편중을 지양하고, 생활체육을 강화하자는 취지에 많은 이가 공감했다. 정부와 체육계는 두 단체를 통합하면서 대한체육회장이 스포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내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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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억원 들여 올림픽 참관단 운영
지방 체육단체 표심 얻기 전략
차기 선거에서 지도자 잘 뽑아야
」
그러나 대한체육회장을 선거로 뽑은 뒤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방 체육단체는 중앙 체육회에 줄서기를 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체육회장은 선거를 앞두고 지방 체육단체의 환심을 사기 바쁘다. 2021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8년째 체육회를 이끄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더구나 그는 ‘선출직’의 힘을 앞세워 광폭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파리 올림픽을 마치고 지난 8월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일방적으로 선수단 해단식을 취소해버렸다. 그는 미리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단 해산을 통보했다. 이날 행사는 당초 체육회 주관으로 인천공항 내 그레이트홀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귀국한 뒤 휴식을 즐기던 양궁 김우진, 펜싱 구본길, 유도 허미미 등 파리올림픽 메달리스트들도 해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았다. 그런데 체육회장의 말 한마디에 해단식이 무산되자 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해단식 취소로 인한 피해는 이게 다가 아니다. 당장 행사 준비에 들인 예산 2300만원이 허공에 날아가 버렸다. 이건 누가 책임져야 하나.
대한체육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리 올림픽에는 98명이 ‘참관단’ 명목으로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3차례로 나뉘어 4박 6일 일정으로 파리를 찾아 올림픽 경기를 지켜봤다. 개인 돈으로 파리를 찾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왕복 항공료를 빼고 이들의 체재 비용을 모두 체육회가 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참관단의 면면도 황당하다. 올림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협 조합장, 조계종 간부가 버젓이 참관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기흥 체육회장의 개인 운전기사도 참관단 자격으로 파리를 찾았다. 참관단을 선정하면서 이렇다 할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참관단 중 상당수는 차기 체육회장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는 선거인단이었다. 내년 초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투표권이 있는 지방 체육단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성·외유성 출장을 보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이들을 재워주고 먹여주기 위해 쓴 비용이 모두 6억6000만원이다. 이 돈도 역시 체육회 예산이다. 체육회는 기업이 낸 기부금 6억원과 자체 예산 6000만원으로 경비를 충당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업이 선수를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돈을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더구나 대한체육회는 최근 수 년간 14개 업체와 310억원대의 수의 계약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기업 운영을 이런 식으로 했다면 배임이나 횡령 혐의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대한체육회에 해마다 4200억원의 국고지원금을 배분한다. 엘리트 선수 육성은 물론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쓰라고 주는 돈이다. 대한체육회 현 집행부에 계속 체육 행정을 맡겨도 될까. 지난달에 이어 24일에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불려간 이기흥 체육회장은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자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살펴보겠다”는 말만 거듭했다.
체육계 인사들이 여의도에 불려가 국회의원에게 추궁을 당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2018년 선동열 감독에 이어 24일엔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까지 여의도에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대한체육회장과 축구협회장 등 체육 행정가는 문제가 있으면 질타받아 마땅하지만, 스포츠 레전드는 경우가 다르다. 선망해 마지않는 스포츠 영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국회의원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 앞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뭘 보고 배울까.
더는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체육계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자정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제 정세에 밝으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뛰어난 ‘회장님’을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육계는 또 여의도에 끌려가 두들겨 맞는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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