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체력이 좋은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체력이 좋다. 체구만 우람한 게 아니다. “회의 등에서 먼저 나가떨어질 지경”이라는 참모들의 전언을 종종 들었다. 윤 대통령의 좋은 체력을 직접 목격할 때도 있었다. 해외 순방 때다.
지난해 말까지 대통령실 출입 기자로 해외 순방에 여러 차례 동행했다. 현장 일정은 거의 늘 빼곡했다. 언젠가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백미였다.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1박4일 간 ‘서울→워싱턴 비행 13시간, 워싱턴 체류 25시간, 워싱턴→서울 비행 14시간’ 일정을 아무렇잖게 소화했다. 한·미·일 3국 협력의 새 이정표도 세웠다. 그때 기자는 녹초가 됐다.
최근 19~22일 윤 대통령의 체코 순방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9일 현지 도착 당일 페트르 파벨 대통령과의 회담·기자회견·만찬 일정을 소화했다. 이튿날엔 오전 9시 한·체코 비즈니스 포럼을 시작으로 오후 7시 동포 만찬 간담회까지 7개의 일정을 쉴 틈 없이 이어갔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신이 나서 일한다”는 참모의 표현이 그럴싸하다. 정력적인 활동가의 모습 딱 그대로다.
윤 대통령은 이런 장점을 국내에선 잘 발휘 못 하는 것 같다. 중간평가 격이던 4·10총선에서 참패했다. 최근엔 국정 지지율 20%선조차 위협받고 있다. 성과에 대한 열정, 이를 뒷받침할 체력 모두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같을진대 결과는 영 딴판이다.
외교나 정치나 상대가 있는 게임이긴 매한가지다. 그런데 상대와 게임의 성격이 판이하다. 동맹·우방·우호국과의 외교는 공통의 이익을 모색한다. 크게 봐선 내가 이익이면 상대가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란 의미다. 정치에서 상대는 협력 대상이라기보단 적에 가깝다. 국민 복리 증진이라는 가치는 퇴색했고, 상대를 눌러야 내가 이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퇴행했다. ‘이권 카르텔’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 윤 대통령에게도 이런 인식이 엿보인다. 생명권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서도 의정 갈등은 완화할 기미가 안 보이지 않나.
물밑 조율, 즉 협상의 양태도 극과 극이다. 외교는 정상 간 성과를 도출하기까지 실무진이 비공개로 부단히 협상한다. 정치에선 협상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진영 내에서조차 비공개 논의가 밖으로 새나가고 결과가 빠그라지기 일쑤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만찬 회동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비공개(?) 독대 요청과 이에 대한 비토가 그렇다. 상대 존중에 기반한 공통 이익 추구와 부단하고 조용한 협상은 외교의 기본이다. 또한, 정치의 기본일 수도 있다.
권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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