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컷] 정리해고 악당? 인사팀 관찰 영화
2시간짜리 영화는 안 봐도 1분 쇼츠는 종일 본다. 최근 장편 영화도 “클라이맥스가 1분, 1초마다 나오는 유튜브 쇼츠와 경쟁하듯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파민 중독 시대, 영화 나름의 생존법이다.
그런데 쇼츠와 경쟁하는 연출 방식으론 그려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다. 가령, 25일 개봉한 영화 ‘해야 할 일’(사진)은 불황을 겪는 조선회사에서 인사팀 발령과 동시에 150명을 구조조정하라고 지시받는 4년 차 대리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그는 존경해온 직장상사와 가까운 동료 중 한명을 명단에 올려야 한다.
흔히 미디어에서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냉혈한으로 그려져 온 인사팀 직원들이 직무상 ‘해야 할 일’을 부대껴 내는 과정을 숨 막히게 담아냈다. 회사가 내보내려는 ‘블랙리스트’를 최대한 포함하는 희망퇴직 기준을 짜는 것부터, 고위직들 의견을 재반영해 명단을 임의대로 조정하는 순간까지 부조리 투성이다. 그렇다고 인사팀도 월급쟁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자기변명은 하지 않는 영화다. 모두의 삶에 메마른 상흔을 남기는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코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다.
각본을 겸한 박홍준 감독이 실제 조선소 인사팀에서 4년여 근무한 경험이 토대다. “기업 구조조정이 노사 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명령을 내린 주체는 한발 물러선 채 지켜볼 뿐 결국 노동자 간의 갈등만 생긴다”는 게 연출 의도다. 구조조정의 악역 인사팀장 역의 배우(김도영)가 연기상 2관왕(부산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을 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일 거다.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도 있지만,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지나온 길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후자의 영화는 때로 누군가에게 스릴러나 호러처럼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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