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용산 만찬 뒤 독대 재차 요청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와 1시간30분간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공식 만찬 회동은 7월 24일 이후 62일 만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요청했던 윤 대통령과의 독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대표는 만찬이 끝난 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게 “대통령과 현안을 논의할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독대를 거듭 요청했고, 대통령실은 이런 요청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또다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만찬 이전 시작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이날 만찬에서 민감한 현안이 논의된 것도 아니다. 복수 참석자에 따르면 공전하는 의·정 갈등과 부진한 당정 지지율 등 여권이 처한 위기 상황은 언급되지 않았다. “새 지도부를 격려하는 상견례 성격의 자리”라는 대통령실의 설명처럼 만찬 내내 상대적으로 가벼운 대화만 오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민감한 이슈는 건드리지도 못한 빈손 만찬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대표는 만찬 예정시간보다 약 20분 이른 오후 6시7분쯤 회동 장소인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이 6시30분 만찬장에 도착하자 한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영접했고,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가장 먼저 악수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 테이블로 이동하면서 한 대표 등에게 분수정원을 직접 소개했다.
윤 대통령이 만찬 테이블에 도착하자 참석자들은 박수로 대통령을 맞이했다.
한동훈 모두발언도 없었다…여권 “이슈 못 건든 빈손 만찬”
대통령실에서는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수석급 참모진 전원 등 13명이 만찬에 참석했다. 여당에서는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 지도부 소속 14명이 참석했다. 메뉴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을 곁들인 한식이었다. 윤 대통령 좌우로는 인요한·김재원 최고위원이, 한 대표 양옆에는 추 원내대표와 장동혁 최고위원이 앉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배려해 오미자 주스가 준비됐고, 술은 따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찬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고 한다. 여야 관계와 10월 시작되는 국정감사, 윤 대통령의 체코 방문과 원전 생태계 등이 대화 주제였다. 윤 대통령은 “이제 곧 국감이 시작되나요”라고 물은 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과 싸우느라 고생이 많다”고 여당 지도부를 격려했다. 이어 체코 방문 성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원전시장이 매우 커지면서 체코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며 “원전 2기 (사업비) 24조원을 ‘덤핑’이라고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원전 기술 등 세세한 내용을 설명하자 여당 참석자들이 ‘원전 전문가가 다 되셨다’고 화답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여야가 26일 본회의에서 육아휴직과 난임치료 휴가를 확대하는 ‘모성보호 3법’을 처리하기로 한 것을 두고는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에는 무거운 현안 대신 가벼운 대화가 주로 오갔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라는 호칭을 쓰며 대화를 이끌었다. 한 대표는 식사가 끝날 무렵 윤 대통령이 아이스라테를 주문하자 “감기 기운이 있으신데, 차가운 것을 드셔도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고, 대통령은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를 좋아한다”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이날 회동에서는 보이지 않는 냉기도 흘렀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당초 한 대표가 모두발언 형식으로 시중 민심 등을 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별도의 발언 순서는 없었고 한 대표도 인사말을 할 기회가 따로 주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두 달 전 만찬 때 윤 대통령이 맥주잔을, 한 대표가 콜라잔을 들고 이른바 ‘러브샷’을 하고, 한 대표가 자신의 발언 순서 때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자”고 말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누가 일어나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분위기였고, 추 원내대표나 다른 참석자들은 길게 발언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찬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분수공원 인근을 10분간 산책했다. 이후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떠난 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게 거듭 독대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어 한 대표는 이런 요청 사실을 미리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이 관계자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간 한 대표의 독대 요청 사실의 언론 유출을 놓고 여권 내 갈등이 불거진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이날 “현장에선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직접 독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독대 요청을 했다고 언론에 알리는 것은 유감”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향후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 됐다.
손국희ㆍ김기정ㆍ박태인 기자 9key@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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