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美 금리 ‘빅컷’ 재테크 지형 변한다
韓 금리도 인하? 부동산 급등에 ‘고심’
크게 시작할까. 작게 시작할까.
미국 월가의 질문에 대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답변은 ‘크게’였다. 그는 지난 9월 18일(현지 시간) 0.5%포인트 금리를 인하하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대응을 위해 금리를 낮춘 이후 4년 반 만이다.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며 ‘빅컷’에 대한 예측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빅컷을 직접 시사한 적 없었고 시장에서도 ‘스몰컷(0.25%포인트 인하)’ 전망이 다수였던 터라,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이 데이터를 너무 따지다 인하 시기를 실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파월 의장은 “연준이 (금리 인하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칫 스몰컷으로 경기 침체를 키운다는 비난을 피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연준은 함께 발표한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기존 5.1%에서 4.4%로 낮추면서 연내 추가 금리 인하도 예고했다.
노동 경직에 선제적 대응
‘실기’ 않겠다는 뜻 분명히
연준이 스몰컷(0.25%포인트 인하)이 아닌 빅컷(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배경에는 경기 하강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이 (금리 인하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칫 스몰컷으로 경기 침체를 키운다는 비난을 피하겠다는 뜻이다.
연준은 성명서에서 “고용 증가가 둔화됐다(Slowed)”고 평가했다. 지난 7월 FOMC 성명서 당시 고용 증가가 완화됐다(Moderated)라는 표현과 비교하면 더 악화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 목표 2% 복귀를 위해 전념하겠다는 기존 표현에 추가로 ‘완전 고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노동 시장을 지원할 시기는 노동 시장이 강할 때, 즉 정리해고가 나타나기 전이고 그래서 금리 인하 사이클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울러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는 낮아졌고 실업률 상방 리스크는 높아졌다”고 연준의 무게중심이 인플레이션에서 노동 시장으로 이동함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0.5%포인트 인하가 새로운 속도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밝혀 앞으로 FOMC에서 빅컷이 보장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됐지만 “과거와 같은 마이너스 금리 시대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립금리가 과거보다 높아진 것 같다”며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작동하는 방식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韓 금리 내리면 좋겠지만…
부채 증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미국이 ‘빅컷’을 단행하며 한국의 금리 인하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존 2%포인트 차로 역대 최대였던 한국(3.5%)과 미국의 금리 격차도 1.5%포인트로 줄어들었다. 미국이 경기 침체 우려에 결국 빅컷에 나섰다는 점에서 한은이 이에 맞춰 금리를 낮추면 간단하다. 우리나라 물가는 2%대로 떨어지며 인하 여건이 마련됐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114.54)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2%로, 2021년 3월(1.9%)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이제 (금리를)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값 폭등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급등 우려 등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국내 사정에 한은은 통화 정책 관련 고민이 깊다. 이 총재는 지난 8월 기준금리 동결 직후 “한은의 통화 정책은 금융 안정을 위한 것인데, 금융 안정의 중요 요인이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23% 올라 25주째 상승했다. 상승폭도 전주보다 0.02%포인트 올랐다. 전국 주간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7% 올라 전주(0.06%)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가계대출은 치솟고 있다. 지난 8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9조8000억원 불어나며 2021년 7월(15조3000억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 새 8조2000억원 늘었다. 가계부채는 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 직전인 8월 대출 막차 수요가 몰린 데다, 추석 연휴가 끼면서 9월에는 전달보다 증가세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오른 집값 수준이 낮아지기는 어렵고, 강남권 오름세가 서울 전 지역과 수도권 등으로 파급되면서 증가세 둔화를 단언하기 어렵다. 시장에서 한은이 인하 조건으로 내세운 물가 안정과 한미 금리 역전차 축소가 이뤄졌지만, 집값과 가계부채가 당분간 잡히기 어렵다는 점에서 10월 인하에 주저할 가능성이 언급되는 이유다.
외환 시장 변동성도 문제다. 미국 금리 인하로 환율이 안정될 수 있지만, 곧바로 한은이 금리를 낮출 경우 환율이 다시 급등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행이 최근 금리 인상을 천명한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며 외국인 자금이 일본으로 이탈할 수도 있다.
다만 정치권의 금리 인하 요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8월 금통위 직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내수 부진을 우려하면서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비난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물가 안정세에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생겼다”고 압박했다. 9월 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며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며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재차 내놨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실장은 “8월에 금리를 내려야 했다”며 한은의 실기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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