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었다 뺐다 끝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담은 학생인권법 발의"
[복건우, 유성호 기자]
▲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학생인권법은 성소수자 학생들의 인권을 고려해 해당 차별금지 사유를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하는 방식으로 법안에 포괄적으로나마 포함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와 함께 이번 법안이 학생인권옹호관을 두고 학생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성소수자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 내용이 교육 현장에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성소수자 단체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다만 성소수자 학생들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학생인권법에서 빠졌다 다시 들어가는 과정에서 돌아봐야 할 지점들도 드러났다.
'성소수자 차별금지' 수십 번 넣었다 뺐다
지난 13일 학생인권법을 대표 발의한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인권단체들은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인권의 문제가 학생인권조례 유무와 지역에 따라 자의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며 "22대 국회는 모두를 위한 학생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보수 정치권은 열악한 학교 현장에서 고통받는 교사의 상황이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보수단체는 기존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반인권적 주장을 하고 있다"라며 "학생인권법은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해 학교 현장 혼란을 줄여주고 인권 친화적인 학교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의 주된 폐지 사유로 꼽혀온 것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조항이었다. 앞서 서울시와 충남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서(법원 집행정지 결정으로 효력 유지 중) 해당 조항이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이번 학생인권법에도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두 용어가 직접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다만 '학생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의 차별행위의 정의에 해당하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간접적으로 규정했다(학생인권법 제8조).
지난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차별의 개념과 사유뿐 아니라 차별행위 조사와 구제 절차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 제2조 제3호는 성별·종교·장애·나이·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고용·교육 등에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별 정체성'이 빠져 있긴 하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보고 있다.
이번 학생인권법이 발의되기에 앞서 한 차례 발의됐다 폐기됐던 기존 발의안에도 두 용어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날 <오마이뉴스>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9일 발의된 기존 발의안은 성별·종교·나이·언어·장애·용모 등 '차별받지 않을 권리'의 항목을 길게 나열하고 있으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포함하지 않았다. 해당 발의안은 이틀 뒤인 11일 철회 처리됐다.
이러한 법안 제정 흐름을 보면 이번에 다시 발의된 학생인권법은 성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두 용어를 직접 사용하기보단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해 간접적으로 담는 절충안으로 보인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문제 삼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 반발에 부닥쳐 처음에는 빠져 있던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당내 고민 끝에 다시 반영된 모습이다.
김문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조례는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게 맞고 법은 좀 더 원론적인 문항으로 구성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라며 "(성소수자 차별금지) 내용이 나열돼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준한다는 표현이 더 상징성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 서울시의회에서 교육위원장을 맡았던 김 의원은 2012년 시의원 시절 '서울특별시교육감 소속 학생인권옹호관 조례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기존 발의안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용어가 빠져 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 기독교계에서) 반대 여론이 실제로 많았고 그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두 용어를) 빼기도 했다. 너무나 많이 고민했고 그 문항을 수십 번 넣었다 뺐다 했다"라며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인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법안에 넣지 않으면 이것을 인권법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결론에 이르렀고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지라도 넘고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준한다는 문항으로 바꾸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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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번 발의안은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센터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지만 적어도 차별금지 사유에 있어서는 나아진 게 없다"라며 "법안을 재발의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들이 분명히 있지만 학생인권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 사유에 관한 부분은 평가 지점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별 정체성이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트랜스젠더 차별 역시 성별에 기반한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보호하는 차별금지 사유임을 인권위는 끊임없이 권고들로 확인해 왔다"라며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번 학생인권법이 발의됐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법을 준용하는 방식은 성소수자 차별금지 내용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라며 "재발의 과정에서 남는 아쉬움도 있지만 앞으로 법안이 제정된다면 성소수자 학생들을 더 든든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교육 당국이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공동 논평을 내어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삭제하고 교육 영역의 비차별 원칙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무력화하려는 반동은 한국 사회가 해소해야 할 긴급한 과제"라며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해 차별금지 사유를 설정한 법안을 존중하면서도 20여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첨예하게 등장한 차별 사유인 성별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현재를 변화시켜야 할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생인권법을 통해 평등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의 투쟁 속에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 또한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라며 "22대 국회는 차별 없는 학생인권 보장과 막힘없는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권리 보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에는 충남도에서, 6월에는 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의회 의결로 폐지됐다. 이번 학생인권법은 두 조례가 법원 집행정지 결정으로 효력이 한동안 유지되는 가운데 발의됐다. 이 법안은 19일 교육위에 회부돼 국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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