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걸린 류승완 감독의 사과... 무엇이 달라졌나

고광일 2024. 9. 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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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 베테랑2 >

[고광일 기자]

 <베테랑2> 스틸컷
ⓒ CJ ENM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잠복 중인 경찰들 사이에서 봉윤주(장윤주)가 주부 도박단으로 변장해 도박판이 벌어지는 하우스에 침투한다. 확실한 물증을 잡으려는 찰나, 수상함을 눈치챈 하우스장에게 정체가 발각된다. 곧이어 경찰들이 투입된다. 하우스를 빠져나가려는 도박단을 체포하고 하우스를 관리하는 조폭들과 일련의 전투가 벌어지지만, 무사히 사건은 종결된다.

오프닝에서 드러난 전작에 대한 < 베테랑2 >의 계승 의지는 곧이어 캐릭터로도 연결된다. 1편에서 친구들과 싸웠다는 아들에게 서도철(황정민)은 "나가서 맞고 오느니 차라리 깽값을 물어주라"고 말한다. 이후 아들은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서도철을 보고 경찰이 됐다는 후배 박선우(정해인)는 길거리에서 칼부림하던 상대를 기절시킨다. 이 장면으로 'UFC 경찰'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과잉 진압으로 3개월 징계를 받는다.

서도철의 계승 의지

삐그덕거리며 연결된 계승 의지는 곧이어 도철의 발목을 잡는다. 전편에서 권력과 재력을 손에 쥔 조태오(유아인)를 압박할 수 있었던 건 미디어의 힘이었다. 친분이 있던 기자에게 수사 내용을 살살 흘리며 군불을 땐 것이 그룹 내에서 조태오의 입지를 흔들었고 결국 초조해진 조태오는 결정적인 악수를 던진다. 그런 서도철에게 마지막까지도 부족했던 건 명분이었다. 일대일 대치 상황에서도 먼저 주먹을 날릴 수 없던 서도철은 CCTV와 시민들의 촬영을 기반으로 '정당방위'라며 반격해 마침내 조태오를 검거한다.

9년이 지난 서도철의 세계에서 미디어와 시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뒷돈을 받고 잘린 기자는 기어이 사이버 레커로 퇴화한다. 구독경제의 달달한 보상 앞에 마음에도 없는 정의 구현을 외치며 사적제재를 선동하는 앞잡이가 됐다. 시민들의 지나친 관심은 불필요한 정보의 공유로 이어진다. 사건 현장에서 서도철과 동료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촬영하지 말라며 시민들을 해산시키는 것이다.
 <베테랑2> 스틸컷
ⓒ CJ ENM
연쇄살인이라는 아찔한 아이템을 다루지만, 류승완 감독은 < 베테랑2 >를 기획하며 "전통적인 의미의 빌런을 없애고 싶었다"는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그 결과, 악랄한 범죄로 사회의 공분을 샀으나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탓에 응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은 이들을 단죄하는 해치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해치의 활동에 환호하는 대중들의 반응이나, 류 감독의 기획 의도처럼 그가 전통적인 빌런이라고 단순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어떤 이유로 사적제재를 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서도철을 향한 계승 의지가 모든 사건의 원인인 세계에서 싸움의 장소도 변화한다. 전편에서는 가건물 하나 규모의 불법차량 개조기지에서 시작된 싸움이 차이나타운 주택가 옥상을 지나 명동 한복판으로 확장됐다. 서도철의 해결 방식이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인 탓이다. 적당히 수사를 무마하려는 경찰 윗선뿐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아야 조태오라는 거물을 잡아넣을 수 있다. 설득 대상은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도 포함된다.

2편은 반대다. 넓은 곳에서 점점 좁은 곳으로 이동한다. 남산공원을 지나 미로 같은 마약굴을 거쳐 피아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옥상. 최후의 결투 장소는 폐쇄된 터널이다. 헤드라이트와 촬영용 조명이 없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은, 악과 싸운다는 명분으로 서슴없이 폭력을 사용했던 서도철의 내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터널 안에서 서도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히 폭력의 계승 의지이자 정당화 그 자체인 박선우다.

선우는 도철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한쪽에서는 미지의 장소에서 도철의 아들이 의자에 묶인 채 휘발유가 끼얹어지는 장면이 송출된다. 터널 안에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죽였다는 오해를 받고 목에 흉기가 겨눠진 채 운전석에 묶여있는 국제결혼여성 투이가 있다. 아들을 구하러 간다면 도철이 해치로 오해받도록 짜깁기 된 정보들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투이를 구한다면 아들에게는 불붙은 라이터가 던져진다.

선우의 강요는 '누구'를 구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철에게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묻는 말이기도 하다. 무슨 선택을 하든, 서도철에 의해 광역수사대에 투입되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던 선우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악에 대한 분노나 좌절감 끝에 서도철이 자신처럼 폭주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서도철은 투이를 구하러 간다. 영화상에서는 광수대 동료들이 아들을 구하지만 도철에게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전편에서 조태오를 검거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정당방위의 명분을 얻은 후에도 서도철은 조태오를 무력으로 때려눕히지 않는다. 서도철은 조태오의 관절기에 걸려 발목이 부러지고, 얻어맞고 쓰러진 상태에서 자신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 또 다른 수갑 한쪽을 조태오의 팔에 채운다. 그가 싸움을 잘해서 생각해 낸 임기응변이 아니라 범죄자를 때려눕히는 게 경찰이 할 일이 아닌 탓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궁지에 몰린 선우는 차를 타고 도주하려다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상태로 충돌해 튕겨 나간다. 서도철은 선우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 심폐소생술을 한다. 그 순간 스크린에서는 도철이 선우를 죽이고 싶은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렇게 살려낸 선우에게 도철은 '조서 쓰면서 살살 죽여주겠다'고 말하며 사건이 종료된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도철이 발견한 자신은 경찰이었다.

20년 걸린 류승완의 사과
 <베테랑2> 스틸컷
ⓒ CJ ENM
2015년 <베테랑>의 대흥행 이후 <극한직업>, <범죄도시>처럼 유쾌한 활극을 곁들인 경찰 영화의 흥행이 줄을 이었다. 물론 <베테랑>도 어디서 뚝 떨어진 작품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만 봐도 <투캅스>부터 <공공의 적>이란 쟁쟁한 선배들이 있다. 범죄척결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대체로는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고민하지 않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들은 속편이 나왔다는 사실과 함께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훼손되지 않은 채 악역만 바뀌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것도 공통점도 있다. 특히 <범죄도시>의 마석도는 시리즈가 거듭되며 전투력 상승과 동시에 성상납도 받던 비리 경찰에서 착하지만, 과격한 정의 구현 캐릭터로 변모한다. 관객들이 가질 일말의 찝찝함도 사라지고 통쾌한 사이다 맛만 볼 수 있도록 한 제작진의 배려다. 악역뿐 아니라 서도철의 변화를 통해서도 주제를 바꿔보려는 < 베테랑2 >의 차이점이 여기서 두드러진다.

물론 < 베테랑2 >에 아쉬운 점도 있다. 학교폭력, 국제결혼, 사적제재 등 하나만 다루기도 묵직한 주제를 저글링 하느라 이야기가 휘청거리는 순간도 상당하다. 그러나 스플릿 디옵터, 이중노출, 표현주의적 미장센 등 촬영과 편집 기술을 동원해 서도철의 내면으로 향하는 듯한 여정을 다룬 것은 기존의 경찰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적 시도라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류승완 감독이 주연으로 출연한 마지막 작품은 <짝패>다. 정두홍과 함께 고등학생 일진들에게 '니네 집엔 삼춘도 없냐'고 패기 있게 되묻고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리던 젊은 감독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학폭과 사이버 레커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아들에게 사과한다.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고. 이렇게 끊임없이 과거를 통해 배우는 경험 많은 이를 베테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면. 이런 베테랑이 늘어난다면. 죽거나 나쁘기만 한 상황은 쉬이 오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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