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느닷없이 가을이 왔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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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그래왔듯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결실을 바라는 마음도 익어가고, 이렇게 가을이 올 것을 믿고 한여름에 무와 배추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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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기자]
해마다 그래왔듯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악스러운 폭염이 쉽게 자리를 내줄리 없었고, 결국 질긴 더위를 끊어낸 건 태풍에 얹혀온 폭우였다. 하루를 낮과 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날, 여름이 물러남을 피부가 먼저 알아챘다.
밤새 바람이 어둠을 치대어 숨통을 틔웠고, 나는 새벽녘에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며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가을이네.'
그야말로 느닷없이 가을이 왔다. 등 뒤에 숨긴 꽃다발을 받은 듯 우선은 반가웠다. 힘 빠진 햇살에 낮아진 기온, 이름 모를 나비들이 상사화 잎을 어르며 날갯짓하고, 떨어진 밤송이에 놀란 들고양이가 줄행랑친다.
내년을 품은 씨앗을 뿌리다
남겨둔 포도송이에 벌과 새가 기웃거리고, 군데군데 새빨개진 고추에 깜짝깜짝 놀란다. 오이와 호박은 시든 이파리 속에 마지막 열매를 숨겼다. 결실을 바라는 마음도 익어가고, 이렇게 가을이 올 것을 믿고 한여름에 무와 배추도 심었다.
▲ 가을 뜨락 시들어가는 것들과 자라고 꽃 피우는 것들. 오이,호박,배추,독말풀,상사화 |
ⓒ 김은상 |
정말 가을은 온 것일까? 아침저녁 찬 공기가 반갑지만 언뜻 스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바뀐 계절에 대한 대가는 다 치른 것일까? 지금의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극한의 더위와 추위, 폭우와 폭설을 움켜쥔 제5, 제6의 계절이 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예측이 가능한 계절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된 것 아닐까?
그 와중에 본 뉴스. 시간당 60mm 이상의 극한 호우만 50여 차례, 북쪽의 찬 공기가 더운 공기와 충돌하여 정체전선, 남쪽 태풍에 수증기가 유입되어 장마철보다 더 많은 비가 전국 곳곳에 내렸단다.
▲ 장마철보다 더 많은 비가 전국 곳곳에 내렸단다.(자료사진). |
ⓒ ingemusic on Unsplash |
'작아서 그리고 바빠서 어느 누구도 꽃을 보지 않는 세상에, 꽃 한 송이를 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커다랗게 그렸다'는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달이나 화성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좀 더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부질없다. 리더란 세상을 망칠 만한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들로 보이는 요즘이다. 먼저 스러지는 것은 언제나 약하고 순한 것들이다.
누군가 말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그렇다 해도 불쑥 찾아오는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쩔 수 없다.
가을이 왔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이제 조금 친숙해진 마당에서 허락되는 시간까지 머물고 싶을 뿐인데... 재앙도 이 가을처럼 느닷없이 닥치는 건 아닐지, 좋은 계절이 왔건만 기후 우울증에 걱정만 늘어 간다. 나이가 들어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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