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써지는 게 내 탓이 아니란다 [배우 차유진 에세이]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사는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차유진 기자]
글이 안 써진다. 그렇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어떻게 매번 소재가 달마다 번뜩일 수 있겠는가. 어항 청소하다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마지막 라디오 방송이란 멘트에, 아쉬움으로 단숨에 써내려갔던 찰나가 또 와주겠는가. 양영아 담임 선생님처럼 감동의 추억을 남겨준 은사가 또 계시겠는가. 단지 내 길고양이들도 무탈하게 각자도생 중이다.
습관삼아 매일 서너 줄이라도 끄적거려 오긴 했다. 마치 한 문장, 한 문장 저축하듯 차곡차곡 쌓이게 해놓자는 심산이랄까. 그렇게 해서 완성된 글들 또한 나름 보람이 있었다. 생각의 꼬리 물기로 문장의 끈을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도달할 수 있었기에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
도움을 바라는 심정으로 좋은 책들도 찾아 읽었다. 다독이 곧 구원일지니. 양질의 자양분을 머리에 가득 넣어주면 다시 생각의 줄기가 솟아나겠지. 이 와중에 만난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전>은 왜 이다지도 재미있단 말인가.
▲ 더위에 장사없다. 하물며 글쓰기는... |
ⓒ 최은경 |
이 정도로 아무 생각도 안난다고? 관찰의 대상이 발견되거나 소재가 떠오르면 뇌의 시동이 걸려야 하는데, 동공부터 풀리는 나른한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에세이를 연재한 지 1년 9개월, 그동안 쌓인 스무 편의 글들, 당월 마감을 목전에 두고 생각은 멈춰버렸다.
급기야 팬심 가득한 지인(아나운서이자 신지혜의 영화음악 DJ, 신지혜님)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저, 글이 안 써져요...!" 이런 지 꽤 여러 날이 되었다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자, 미소 지으며 일러준 뜻밖의 진단은 "더워서 그래요."
본인 역시 칼럼을 한 달에 네 편 정도는 거뜬히 쓸 정도로 글쓰기를 즐기며, 집필 중인 새 책도 11월까지 마무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절반 정도의 페이지만 간신히 넘겼을 정도라며 글이 안 써진다고 했다. 그냥 몸과 정신이 무기력해진 채로 앉아있기만 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만치 더우면 일도, 걷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증발해 버리고 마는 것인가. 덧붙여 쎄하게 들려오는 맺음말은, "어쩌면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른대요. 그렇다면 내년은...?"
포기 안 하면 실패도 없는 법
▲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 이렇게 더운 추석은 처음이라지요. |
ⓒ 최은경 |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허접해도 계속 끄적거리긴 해보자. 잘 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기록해 두고 싶었을 뿐이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머리도 마음도 한결 나아지겠지. 그때까지 조금만 버텨보자. 포기 안 하면 실패도 없는 법이니까.
아, 달밤에 더위를 잠시 식혀줄 비가 내리고 있다. 땅을 적시는 빗소리가 들려오니 감성이 살짝 차오른다. 동시에 졸음도 몰려온다. 아이고, 이 몹쓸 바른 생활 육신아...! 비가 그치기 전에, 졸음을 잠시 물리고 단 몇 자라도 흔적을 남겨봐야 겠다. 폭염이 다시 생각을 앗아가기 전에.
덧붙이는 글 | 2024년 9월부터 새로운 활동명인 <차유진의 배우 에세이>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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