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충격적이었다"던 찬 국밥, 먹어봤습니다

정세진 2024. 9. 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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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서울로, 줄 서서들 먹는 평양냉면집... 이거 정말 별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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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 서령 순면 시그니처 메뉴로 고명은 삶은 달걀과 지단, 가늘게 썬 오이.
ⓒ 정세진
이른바 '평냉' 열풍이 이전에 비해 시들해진 느낌이다. 트렌드 변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고, 다소 비싼 가격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유행하는 음식에 비교적 담담한 배우자가, 어느 날 꼭 가봐야 할 맛집이 있다며 나에게 강력추천을 했다. 강화도에서 지난 5월 서울 회현동으로 자리를 옮긴 식당 '서령'이다.

육향과 슴슴함의 조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맛

이곳의 오너셰프인 이경희, 정종문 부부는 과거 홍천에서 '장원막국수'를 운영했다. 용인의 유명 맛집인 '고기리 막국수'가 바로 이들에게 기술을 배워 창업한 가게란다. 부부는 평양냉면으로 업종을 변경한 후 강화도에 가게를 열었다.

강화도 서령은 로컬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서 지난 2023년 6월 SBS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했다. 올해 초 부부는 강화도 가게를 접은 뒤 새 공간으로 왔는데, 직장인들이 많은 서울 4호선 회현역 인근이었다.

나는 브레이크 타임이 끝날 시간에 맞춰 배우자와 함께 가게에 도착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엄청 맛있나보다' 막연하게만 생각했고, 예상보다 회전이 빨라 장시간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가장 기본인 순면을, 배우자는 들기름 막국수와 비슷해 보이는 들기름 순면을 주문했다. 여기에 컵술을 한잔씩 추가했다.
▲ 들기름 순면 들기름을 넣고 비벼먹는 고소한 국수다
ⓒ 정세진
일단 조심스럽게 육수를 맛봤다. 순간 '뭐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체로 평양냉면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슴슴한' 풍미다. 과거 달달한 함흥냉면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은 초창기 을밀대, 을지면옥 같은 평양식을 낯설어했고 손님들은 대부분 실향민이었다.

평양냉면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육수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가게들이 과하게 진한 육향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통파' 평냉 마니아들은 육향을 꺼려하고 반대로 육향 때문에 먹을 만 하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론이 길었는데, 서령의 육수는 바로 이 슴슴함과 육향이라는 딜레마 사이에서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아냈다. 한입 마시는 순간 '뭐지?'라고 놀란 이유가 이것이다. 깔끔하면서 쨍하고, 진국인데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 밸런스를 찾기까지 오너셰프가 얼마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육수 맛이 너무 좋았던지라, 나는 별도로 따뜻한 육수를 더 가져다 달라고 요청해서 홀짝홀짝 국처럼 마셨다.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일품인 들기름 순면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최고였다. 듬뿍 올라간 김가루에 역시나 적절한 간이 자꾸 먹고 싶어지게 만든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살아있다. 용인 고기리 막국수를 아직 가보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꼭 한번 방문해 맛을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지인이 먹고 "충격적이었다"고 한 냉수반
▲ 접시만두 속이 꽉찬 만두가 충족감을 준다
ⓒ 정세진
▲ 항정살 돼지수육 촉촉함이 살아있는 수육
ⓒ 정세진
사이드로는 만두와 항정수육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만두를 외식으로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일단 손이 엄청나게 가는 메뉴다 보니 직접 빚는 가게가 많지 않아서다. 중국집 군만두가 서비스로 밀려난 것은 효율성 때문에 공장제 만두로 대체되면서부터다.

손만두를 쓴다고 해도 조미료를 과하게 넣거나 당면으로 양을 불리는 식으로 단가를 낮추는 곳이 상당수다. 그런데 서령의 접시만두는 말 그대로 속이 꽉 찼다. 투박해 보이지만 적절한 두께로 씹는 맛을 살린 만두피 역시 정성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냉면집에 가면 왠지 시키기 망설여지는 메뉴가 수육이다. 특히 혼자서 방문했다면 양과 가격 때문에 여러모로 버겁다. 하지만 서령에서는 6000원 가격에 아담 사이즈 100g로 주문이 가능했다.

종종 뻣뻣한 수육이 나오는 냉면집도 많은데 이곳은 마치 항정살이 지금 막 삶아낸 듯, 이로 슥 잘라질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한 육즙이 살아있다. 무생채와도 궁합이 좋지만 새우젓에 살짝 찍어 생마늘 한조각을 곁들여 먹으면 술안주로 이만한 것이 없다.
▲ 냉수반 하루 30그릇 한정의 냉국밥
ⓒ 정세진
냉수반은 서령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주문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지인이 SNS를 통해 "충격적이었다"는 표현까지 썼길래 맛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명성이 무색하지 않은 맛이다. 갈증을 씻어주는 맑고 차가운 육수가 해장으로 그만일 듯 하다. 맵고 자극적인 해장국에 비해 속도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면요리가 다소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한 메뉴다.

서울의 목 좋은 장소가 아닌, 변방에서 이 정도 실력을 갈고 닦아온 사장님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재오픈을 목놓아 기다렸다는 강화도 시절 단골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이처럼 가게만의 또렷한 개성을 키우고 유지해 온 맛집들이 오랫동안 번성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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