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다녀와 집어든 책, 이주민들 색은 어떤 걸까
[장순심 기자]
추석을 앞두고 역사 근처 재래시장을 찾았다. 가까운 재래시장과 규모는 비슷하지만, 대형 마트를 끼고 있어서 재래시장과 마트를 오가며 두루 장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간단히 점심 해결 가능한 단골집도 있기 때문이었다. 점심도 먹고 추석 장도 보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는 해도 시장은 무척 북적였다. 추석이 한민족 명절이 맞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장엔 외국인, 특히 중국말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아시아의 다양한 언어들이 계속 들렸다.
원래도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고 외국인 상점도 많은 곳이었지만, 이번엔 특히 우리말보다는 외국말이 더 많이 들렸던 장보기였다.
▲ 추석을 앞두고 역사 근처 재래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북적였다. |
ⓒ 연합뉴스 |
이는 전체 인구 대비 4.4%에 달하며, 그중 6.8%가 이곳 경기 부천에 거주한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에게도 (한국의) 명절은 특별한 날로 기념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2022년 기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외국이주민 현황).
브래디 미카코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이주민의 이야기다. 그리고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다. 말로만 들었던 책을 추석 풍경을 보고나서 다시 집어들었다.
▲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책표지. |
ⓒ 다다서재 |
'단정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는 영국의 '시티즌십 에듀케이션 citizenship education'은 200만 이주민 시대 한국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양인,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단지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풀어나가자는 발상이 인상적이다.
특히 거리에서 노숙자가 저자와 아들을 향해 "니하오"라 말하며 히죽거리는 상황에 대처하는 장면은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방금 전 일에 대해 두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첫 번째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내가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야. 하지만 엄마랑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가족일 테니까 동양인으로 보이는 거지. 두 번째로 친구랑 있든 엄마랑 있든 나는 동양인으로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친구랑 있을 때는 남자밖에 없고 덩치 좋은 애도 있으니까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한 대 맞을 수도 있지. 그래서 아무도 나한테 차별적인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엄마랑 함께 다니면 여자와 아이라는 약자 콤비가 되니까 시비 걸기 좋은 거고.
하지만 실은 세 번째 방향도 있어. '니하오'란 영어로 옮기면 '헬로'잖아? 중국인에게 중국어로 인사를 하면 한결 친숙해 보여서 돈을 주지 않을까? 이런 사업적인 판단 때문에 그 아저씨가 '니하오'라고 했을 수도 있어. 단정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대. 시티즌십 에듀케이션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그게 엠퍼시empathy로 향하는 첫발이라고."(p.142-143)
지난해와 올해 한 학교에서 나는 책 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중국계 학생과 베트남 이주민 학생이 각각 참여했다. 우리말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글을 쓰는 수업에 참여하게 된 건 왜였을까.
대체로 얌전하고 순종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이들을 적극 추천했던 교사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결과를 내야 하는 주 2차시 수업에 그 학생들이 압박을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다양성이 증가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진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많아진다. 그런 상황에 신경 쓰게 되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불편하고 귀찮고 싫다. 그러나 '편하려고만 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니까(책 68쪽)' 우리는 노력을 한다. 더구나 교육적 노력은 다양성의 사회에서 숨은 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 한국어로 글쓰기 수업에 중국계 학생과 베트남 이주민 학생이 각각 참여했다.(자료사진) |
ⓒ taylaktictac on Unsplash |
'심퍼시는 감정, 행위, 이해이지만 엠퍼시는 일종의 지적 작업으로, 자신이 타인의 입장이었다면 어떨지 상상하여 누군가의 감정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혼란스러웠던 영국 사회에 시티즌십 에듀케이션이 '엠퍼시' 교육으로 연결되었던 것처럼 200만 이주민 시대의 우리 교육에도 '엠퍼시 교육'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이밖에도 다양한 상황과 사례를 통해 '책은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동양계 이민자의 눈으로 영국사회의 이면을 차분하게 관찰한다. 복지국가와 다문화 사회의 이상이 무너지고 인종차별, 빈부 격차, 성소수자 문제 등의 난제들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표지글)의 모습은 이미 한국 사회의 문제가 되었으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마침 정부의 2025년 고교 무상교육 예산이 99% 삭감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고교 무상교육이 중단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저소득층 가정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는 교육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이 이어진다는 의미이며,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서 소외되고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빈곤 지구 아이들은 빈곤 보조금을 받는데 그 돈은 가난한 아이들과 그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활동이나 과외활동에 쓰이기도 한단다.
현재 우리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 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긴축정책은 결과적으로 빈곤가정을 위한 예산이나 교육활동을 위한 예산의 축소를 의미하며, 결국 교육의 빈틈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해도 교육적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교육예산의 삭감은 다문화가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다문화가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가정에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바다. 이미 주거지원, 교육지원, 의료지원, 직업 훈련 및 취업 지원, 법률지원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육지원은 교육청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심리적 정서적 프로그램으로 제공되는데, 교육예산의 삭감이라니 어쩐지 불안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각 색깔별로 뜻이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과 우울을 의미한다. 책의 말미에 아들의 색은 블루에서 그린으로 바뀐다. 더는 우울하지 않거나 성장하는 중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짐작한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색은 어떨까. 그들의 색이 긍정일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척 기분 좋을 것 같다.
책에서 저자가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는 방식은 무척 조심스럽다. 도움을 줄 때와 받을 때 주고받는 사람의 상황, 마음, 주변의 분위기까지 살피는 세심함이 보인다. 우리 사회도, 교육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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