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기 승패가 펜실베이니아 좌우…격전지 된 바이든 고향

임성수 2024. 9. 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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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주 르포 1. 펜실베이니아주의 풍향계 스크랜턴
“해리스의 노조 지원 기대” VS “처음으로 공화당에 투표”
미국 대선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 있는 조 바이던 대통령의 유년시절 주택(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외조부 집인 이곳에서 10살까지 살았다.

2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노스워싱턴대로 주택가. 스크랜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향으로, 노스워싱턴대로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년 시절을 보낸 주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하지만 온종일 가을비가 흩뿌린 탓인지 방문객은커녕 인적조차 드물었다. 이웃집 남성은 “여기가 바이든의 옛집”이라고 알려주면서도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택 앞에 세워진 작은 팻말을 보고서야 바이든이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팻말에는 ‘이 집에서부터 백악관으로, 신의 은총과 함께’라고 쓴 바이든의 친필 사인 사진이 담겨있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유년 시절 집 앞에 작은 팻말이 놓여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년 시절 이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해뒀다.

인접한 곳에 사는 백인 여성 캐럴(89)은 “이 동네는 대부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단언하며, 주변 주택 앞마당에 꽂혀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 지지 팻말을 가리켰다. 실제로 여기저기 해리스 부통령과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지지한다는 팻말이 꽂혀 있는 집이 많았다.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은 배경에는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를 휩쓸었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이 바이든의 승리 확정 속보를 내보낸 시점도 펜실베이니아 승리를 결정한 직후였다.

스크랜턴은 펜실베이니아의 민심을 읽을 수 있는 풍향계 같은 곳이다. 인구 7만5000여 명에 불과한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소도시지만, 중산층과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이 혼재해있어 펜실베이니아가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 지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다. 스크랜턴에서의 승부가 펜실베이니아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셈이다. 스크랜턴은 한때 철강, 철도 산업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소도시로 쇠락했다. 스크랜턴이 속한 라카와나 카운티도 민주당의 텃밭이었지만 점차 공화당의 득표력이 올라가고 있다. 이날 만난 유권자들도 대부분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표가 가진 위력에 대해 실감하는 눈치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주택가에 24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팻말이 꽂혀있다.


캐럴은 “나는 해리스를 좋아한다. 그녀는 조(바이든 대통령)와 함께 일해 왔다. 그녀는 검사 출신이고 정말 잘 일 해왔다”며 “바이든을 대신할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면 해리스를 선택하겠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에 관한 한 트럼프가 낫다고 하지만, 해리스가 경제에서도 (트럼프를) 따라잡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미국을 한번 운영해봤고 그걸로 충분하다. 그는 그냥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다운타운에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딴 거리.


스크랜턴엔 가는 곳마다 바이든의 이름을 딴 도로들이 눈에 띄었다. 바이든이 고령 논란 탓에 결국 후보에서 사퇴했지만, 스크랜턴에서만큼은 그를 노조 친화적 대통령이었다며 좋아한 유권자들이 많다. 바이든이 ‘횃불’을 넘겨준 해리스를 지지하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데이브 에번스(57)는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확정하지 못했지만, 해리스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다”며 “해리스는 바이든만큼 노조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13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대형 운수노조 ‘팀스터스’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팀스터스가 민주당의 우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해리스에게 불리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자신을 ‘스크랜턴 조’라 부르며 펜실베이니아 블루칼라 노동자의 친구로 자임해온 바이든과 달리 캘리포니아 출신 해리스는 이곳 주민에게 다소 낯선 정치인이다. 일부 미국 언론은 해리스의 ‘스크랜턴 문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에번스도 “노조에서도 해리스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가 양분돼 있다”면서도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a loose cannon)이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어야 하지만 트럼프는 독재하려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젊은 유권자들은 민주당 성향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스크랜턴에 있는 메리우드 대학교에서 만난 20대 유색인종 여성 노리는 “우리 정부가 여성 대통령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 대통령을 갖는 것이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수 인종 여성도 백인 남성만큼이나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판을 뒤흔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함께 인터뷰에 응한 백인 여성 세라는 “트럼프보다 해리스의 시각이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해리스가 젊은 층 표 덕택에 펜실베이니아를 이기고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사실 두 사람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크랜턴에서도 바이든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편의점 앞에서 비를 피하던 맥 맥도너(52)는 “펜실베이니아도 불법 이민자 문제가 심각하다. 내가 범죄를 저지르면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불법 이민자들은 성역에 있는 것 같다”며 “평생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에 투표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2020년에는 바이든이 중도적이라 그를 찍었지만, 그는 버락 오바마나 낸시 펠로시처럼 좌파로 갔다”며 “해리스는 더 좌파이기 때문에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크랜턴에서도 도심에서 외곽으로 벗어나자 훨씬 많은 주택이 트럼프 지지 팻말을 세워두기도 했다. 고학력 엘리트에게 반감을 느끼는 백인 블루칼라의 마음을 해리스가 헤아리지 못한다면 ‘제2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016년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를 트럼프에게 내줬고,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스크랜턴에서 불과 차로 30㎞ 정도 떨어진 인접 도시 윌크스베어에서 집회를 열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스크랜턴(펜실베이니아)=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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