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파워인터뷰 - 이재오가 말하는 정치 복원의 묘수(妙手)
“‘야당에 양보하시죠’ 노무현의 한 마디, 장외 나간 야당 불러들였죠”
■사학법 반대 野 장외투쟁 길어지자 노무현 대통령 통 큰 결단
■MB는 총리·국방장관 추천권 야당에 주고 극한 대립 벗어나
■“욕 먹는 것도 대통령의 일… 야당은 과격·과도·과신 경계해야”
정치는 고차 방정식이라고 한다. 온갖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의 정치 상황이 그렇다. 난국을 벗어날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도 해법은 있게 마련이다. 기출문제에 힌트가 있듯이 정치 난제의 해법은 선례(先例)에 들어 있다.
정치사에 획을 그은 선례를 남긴 걸출한 인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재오(79) 전 의원은 협치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두 번의 원내대표와 특임장관(정무장관)으로 여·야·정 가교역할을 도맡았던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기발한 책략으로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해내곤 했다. 월간중앙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그에게 답을 구한 이유다. 9월 6일 경기도 의왕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았다. 기대했던 대로 이 전 의원은 직접 겪은 ‘선례’들을 숨김없이 공개했다. 난국을 타개할 묘수가 그 안에 있었다.
Q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오신 지 1년쯤 됐죠?
A : “작년 7월에 왔죠. 1987년 이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으면서 제도적 민주주의는 자리 잡았어요. 이제는 일상의 민주주의로 전환됐어요. 그런데 민주주의적 사고나 문화는 아직 선진국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Q :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패권이 판을 칩니다.
A : “제도적으로는 다수결의 원칙이 맞아요. 하지만 그게 함정이에요. 한 석이 더 많아도 다수당이 되잖아요. 51% 지지받은 사람과 49% 지지받은 사람의 표수 차는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51%가 다 차지하죠. 이게 제도적 민주주의의 함정입니다.”
Q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 건가요.
A : “한 석이라도 많은 사람의 결정에 소수는 따라야 한다는 건 내용적으로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어요. 1987년 이후 민주주의는 바로 일상의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거예요. 소위 제도적 민주주의의 함정 내지 결함으로부터 벗어나서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하자는 거죠. 우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해요.”
여야 원내대표 부른 노무현, “야당에 양보하시죠”
Q : 국회에 일상의 민주주의를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 “여당이 소수라도 야당이 합의를 봐야지요. 여야가 합의로 정치하라고 국회가 있는 겁니다. 협치하라고 했는데 야당 수가 많다고 제멋대로 해버리면 안 되죠. 소수 여당과 합의해 국회를 운영하는 게 바로 일상의 민주주의예요.”
Q : 합의와 협치가 사라진 게 지금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이긴 합니다.
A : “그게 제일 안 되고 있어요. 그렇다고 여당은 잘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다수당 횡포만 주장하고 반대만 하면 되겠어요? 여당도 협상 능력을 발휘해야죠. 지혜를 짜내서 야당을 설득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는 게 여당의 능력이에요.”
Q : 국회의원 6선에 원내대표만 두 번 하셨죠. 기억나는 협상이 있나요.
A : “2006년 초 원내대표 할 때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했던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안 협상이 있어요. 2005년 말에 우리 당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면서 의원과 당원들 이끌고 장외 투쟁을 벌였어요. 그런데도 여당은 교육위원회에 우리가 요구하는 재개정안 상정 자체를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 추운 겨울에 사람은 안 모이지, 박 대표는 고집부리지 미칠 지경인 거예요. 내 앞에 하던 김덕룡·강재섭 원내대표가 두 손 들고 사퇴할 정도였으니까요.”
Q : 노무현 정부 때 여야가 가장 격렬하게 맞붙었던 사건 아닙니까.
A : “내가 박근혜 대표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출구가 안 보이니까 나를 지지해준 거예요. 원내대표 되고서 김한길 대표한테 사정했어요. 여당이 이렇게 버티면 되겠냐, 우리 두 사람이 협치를 좀 해보자. 저녁에 몇 번을 시내 중국집에서 만나 얘기해봤는데 결론이 안 나요. 그래서 내가 일요일에 북한산 등산을 제안했어요. 산 위에서 시원하게 얘기해보자. 그래서 북한산 대동문으로 김한길 대표하고 산을 올랐어요. 산 위에서 협상하는데 여당 체면도 세워줘야 할 거 아녜요. 그래서 ‘교육개혁안을 상임위에서 논의한다’ 이런 건 안 해도 좋으니까 ‘상임위에 상정할 수 있다’ 정도만 하자고 제안했죠.”
Q : 한 발 양보한 타협안이네요.
A : “상임위에서 처리하고 안 하고는 당신들 마음이지. 상정만 하면 원외투쟁 안 하겠다. 국회로 끌고 들어올 테니 상생하자, 그런 거예요. 김한길 대표 입장에서도 안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사학법 재개정안을 교육위에 상정할 수 있다’, 이걸 합의했어요. 그걸 갖고 의원총회에 왔어요. ‘지금까지 사학법 재개정안은 말도 못 꺼냈는데 교육위에 상정할 수 있다고 합의했으니, 통과는 우리 야당 능력이다, 받아들이자’ 그러니까 의원들도 그 추운 겨울에 원외 투쟁 지긋지긋하던 참이었으니 ‘아이고 잘됐다, 좋습니다’ 하고 좋아하는 거예요. 우리는 장외 투쟁에서 철수할 명분이 생겼고, 여당은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일 명분이 생긴 거죠. 이렇게 끈질기게 협의하고 지혜를 모으고 양보할 수 있는 안도 마련해내고 해야 정치죠.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고서 돌아설 일이 아니죠.”
Q : 박근혜 대표는 뭐라던가요.
A : “교육위 상정하겠다는데 야당이 그 이상 할 게 어디 있냐, 원외 투쟁 철수하자고 했죠. 여당에서 상정해주겠다는데 박 대표도 원외 투쟁을 계속할 명분이 없잖아요. 그래서 3개월인가 밖으로 돌다가 국회로 돌아왔어요. 그게 지금도 국회에서 성공적인 여야 합의 선례로 남아 있어요.”
“야당 원내대표 집이라도 찾아가야”
Q : 그런데 여당 의원들이 순순히 받아들였나요?
A :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보고하니까 의원들이 펄쩍 뛰었을 거 아닙니까? 김한길 원내대표한테 화살이 쏟아졌겠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거들어줬어요. 노 대통령에게서 조찬 하자고 전화가 왔어요. ‘이재오 대표님, 저하고 아침 식사 한번 합시다.’ 대통령이 조찬 하자니까 우리 당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내가 그랬어요. 여야를 떠나서 대통령이 밥 먹자는데 그걸 거부할 명분이 어디 있냐? 무슨 이야기 할지도 모르는데 일단 가봐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갔어요. 나만 부른 줄 알았더니 김한길 대표도 부른 거예요. 그래서 나랑 김 대표가 나란히 앉고, 노 대통령이 저쪽에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노 대통령의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밥을 먹다가 김한길 대표를 보더니 그러는 거예요. ‘김 대표님, 이번에는 이재오 대표 손을 들어주시죠.’”
Q : 예상 밖의 반전인데요.
A : “협상안을 받아들이라는 말이잖아요. 김한길 대표 얼굴이 벌게졌어요. 느닷없이 야당 말 들어주라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대통령이 그렇게 받으라는 데 여당이 어떻게 거부하겠어요. 그래서 잘 이뤄졌어요. (국회 교육위는 2006년 4월 18일 이재오 당시 원내대표가 발의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꼭 여당 편만 들 게 아니라 여야 협상이 안 되면 원내대표들을 불러서 양쪽 말도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때론 야당 대표를 편들어 주기도 하고요. 이런 게 협치죠.”
Q : 이후 정국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A : “그다음부터는 노무현 대통령 욕을 못하겠더라고요. 대통령이 그 정도로 배려해줬는데 야당 원내대표도 좀 보답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받은 게 있으면 갚는 것도 있어야 인지상정이죠. 그 덕분에 나중엔 노 대통령하고 친해졌어요.”
Q : 지금도 의지만 있으면 정치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거네요.
A : “얼마든지 바뀌죠. 야당은 저러면 안 돼요. 무조건 탄핵하자, 무조건 특검하자. 아무리 의석수가 많아서 특검안을 발의해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면 안되잖아요. 야당도 대통령이 거부권 쓸 줄 알면서 하는 것 아닙니까?”
Q : 정치적인 득실을 따져 보는 거겠죠.
A : “그러니까 정국만 경색되죠. 안 되는 거 빤히 알면서 야당이 밀어붙이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잖아요. 그럼 협치가 안 되죠. 어느 정도 합리적인 건 여당에 양보도 하고 합의도 하는 게 야당에도 좋습니다. 국회에서 합의해 올렸는데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때는 야당이 공격할 수 있잖아요.”
A : “여당도 야당 성질 알면 원내대표가 밤에 야당 원내대표 집 앞이라도 찾아가서 인간적으로 호소해야죠. 술도 한잔하면서 툭 터놓고 우리 내부 사정이 이렇다, 한 번만 양보해줘라, 이 문구만 떼 주라, 이 문구만 고치자, 이렇게 사정도 하고 그래야죠. 한 번에 안 되면 몇 번을 찾아가서 인간적으로 괄시 못 하게 만들면 아무래도 협상이 부드러워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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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욕하는 의원 아닌 국민 보고 국회 갔어야”
Q : 요즘 정치라는 게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A : “예전에는 회의장에선 소리 높여서 싸우다가도 밖에 나오면 서로 좋게 이야기하고 저녁에 술도 한잔하면서 오해도 풀고 그랬어요. 그렇게 자주 만나서 정치를 했어요. 요즘은 여야 간에 술 먹는 건 고사하고 같은 당끼리도 서로 의견이 다르면 만나지도 않는다면서요?”
Q : 당원들이 마음에 안 들면 실력행사를 하니까 의원들이 당원 눈치 안 볼 수 없다더군요. 좋은 말로는 ‘당원 민주주의’라고 하지만요.
A : “민주주의와 독재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해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당원 의견 100% 듣겠다고 하면 의원들의 생각이 구속됩니다. 의원들도 철학이 있고 국정과 지역구 발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텐데 당원들이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의원을 움직이려고 하면 되겠어요?”
Q : 당원들 뜻에 맞추려다 보니 의원들의 말도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 같습니다.
A :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정치 공세에 여당을 복속시키려는 것일 뿐이죠. 그게 독재지, 독재가 따로 있나요. 그런 게 일상의 민주주의가 안 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주장을 하려면 육하원칙에 의해서 근거를 대야죠. 요즘 가만히 보면 민주당은 탄핵을 입에 달고 사는 거 같아요.”
Q : 벌써 여러 번 시도하고 있죠. 방통위원장도 탄핵하고, 검사·판사도 탄핵한다고 하고요.
A : “예전에는 탄핵이 법전에만 있는 용어로만 알았어요. 의원들이 입 밖에 내는 건 꿈도 못 꿨어요. 그런 걸 의식하면 정치를 못 해요. 탄핵을 말하는 사람은 딱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잖아요. 또 대상자도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정치가 안 되죠. 정치는 좀 자유롭게, 너그럽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탄핵하기 위해 탄핵 거리를 만들려고 하면 되겠어요?”
Q : 빌미를 안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 “협치를 해야죠. 협치는 여당의 무기예요. 만나면 정든다고 하잖아요. 자주 만나야 돼요. 싸우더라도 만나야 돼요.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고 숫제 안 만나버리면 뭐 방법이 없죠.”
Q : 이번 국회 개원식에 대통령이 불참했습니다.
A : “정진석 비서실장이 자기가 건의했다고 하더군요. 대통령 욕만 하는데 어떻게 가느냐는 건데, 겉으로는 말이 돼요. 자기 욕하는 사람 잔치에 누가 가고 싶겠어요. 그러나 대통령이잖아요. 욕을 해도 국회에서 하고 국회의원이 하는 거예요. 욕하는 국회의원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국민을 보고 가야 하는 거죠. 어쨌든 그 욕하는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은 사람이에요.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이고요. 여당이 되면 욕 듣는 거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돼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우리가 얼마나 욕했나요?”
Q : 그냥 참아라?
A : “그러려니 해야 돼요. 욕 안 먹는 여당이 어디 있으며, 욕 안 먹는 대통령이 어디 있습니까. 권력은 국민의 뜻 반 국민의 욕 반이에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해야 돼요. 그 욕을 가슴에 담지 말고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보내면 되는 거예요.”
Q : 요즘 대통령이 감정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 거 같습니다. 얼마 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식사하기로 한 것도 기분 상해서 취소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A : “자꾸 그렇게 쓸데없는 말, 되지도 않는 말이 돌면 처음에는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다가도 결국엔 국민의 머리에 스며들게 돼요. 그게 쌓이고 쌓이면 결국 불신이 되는 거예요. 그런 욕은 안 들어야죠.”
Q : 과거 특임장관 하시면서 야당과 가교 역할을 하셨잖아요. 지금 대통령실이나 정부에 그런 역할을 할 만한 사람 누가 있을까요?
A : “국회 부의장도 해보고 정무수석도 해본 정진석 실장이 해야죠. 다른 참모들 중에는 국회와 원활하게 소통할 만한 사람이 보이질 않네요.”
Q : 정진석 실장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A : “비서실장은요, 대통령 생각만 대변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야당과 만나서 저들이 요구하는 거, 대통령 비판하는 거 들어줘야 돼요. 그래야 야당 분위기를 알 수 있잖아요. 분위기나 흐름을 알고 대통령한테 ‘지금 야당 분위기가 이렇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이렇게 방향을 바꿔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건의를 해야지요.”
야당이 추천한 김황식 총리·김관진 국방장관
Q : 특임장관 할 때 그런 역할 많이 해보셨겠네요.
A : “이명박 정부 때 좋은 예가 있어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청문회도 못 가보고 낙마했어요. 이명박 대통령한테 우리가 그랬어요. ‘이번에는 야당에서 총리 후보를 추천받아 봅시다.’ 자기들이 추천한 사람을 청문회에서 거부하겠어요? 대통령도 흔쾌히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마침 당신도 그 생각을 했다면서요.”
Q : 상당히 파격적이네요.
A : “곧바로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서 그랬죠. ‘총리를 야당에 주면 조용하겠어요?’ 이번에 야당에서 총리 후보를 추천하면 그대로 반영시킬 테니 호남 출신으로 추천해달라고 했죠. 박 원내대표가 진짜냐고 되묻는 거예요. 내가 왜 거짓말하겠냐, 대통령께서 호남 출신 야당 총리를 추천받아 오라고 했다. 만약에 우리가 호남 출신을 뽑으면 여당이 정략적으로 한다고 그럴 거 아니냐, 그러니 당신들이 추천해라. 그렇게 해서 추천받은 분이 김황식 총리예요. 대통령도 그 정도면 좋다고 하고, 국회 청문회도 무사히 통과했죠.”
Q : 요즘 시국에 참고할 만한 선례네요.
A : “대통령이 정치를 꼭 교과서대로만 할 건 아니에요. 그런 게 위기 돌파 능력이에요. 그 후로는 지금까지 야당이 추천해서 총리가 됐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그때가 유일했죠.”
Q : 다른 예는 없었나요?
A : “장관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국방부 장관을 정해야 하는데 청와대에서 이미 후임을 다 정해놨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명박 대통령한테 국방장관도 호남출신으로 야당 추천을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했죠. 대통령도 좋은 생각이라며 추천받아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또 가서 국방장관을 민주당이 추천하면 대통령께서 발탁하겠다고 한다고 전했죠. 그렇게 해서 추천받은 사람이 전북 출신 김관진 장관이에요.”
Q : 그런 파격이 꼬인 정국을 해결하는 데 아주 귀한 실마리가 될 테죠.
A : “김황식 총리와 김관진 장관이 들어오고 나선 야당이 욕하는 수위가 낮아졌다니까요. 정부 말기에 여야 관계가 비교적 순탄하게 끝난 이유 중 하나예요. 야당이 크게 딴지를 안 걸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야당 대표를 자주 만났어요.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욕을 안 한 건 아니에요. 돌아서면 ‘쥐박이’니 하면서 욕하고 그랬죠. 그러나 야당의 정치 공세는 그러려니 하고 정치를 풀어나가는 거죠.”
Q :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A : “당연히 필요하죠. 필요한데, 이번에 한동훈·이재명 대표 만나는 거 보니 별 기대는 안 됩니다.”
Q : 여야 대표 회담에 실망하셨나보군요.
A : “회담은 생산적이어야죠. 야당은요, 영수회담에 의제를 고집하면 안 돼요. DJ 때에도 그랬지만, 영수회담은 의제보다 만나는 게 중요한 거예요. 만나고 나서 무슨 이야긴들 못 하겠어요. 그런데 의제를 정해 놓으면 그 의제에 구속돼 버려요. 대통령실과 여당은 의제에 모범답안을 내려고 할 테고, 야당은 자기들 바라는 답변을 들으려고 하겠죠. 그렇게는 회담이 안 돼요. 얼굴 한번 보자, 밥 한번 먹자고 일단 만나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는 거고, 그렇게 뭔가 이루어지는 거죠. 사전에 의제 정하다 보면 만나지도 못하고 만나기 전에 절차 놓고도 깨집니다.”
Q : 서로 좀 대범하게 할 필요가 있겠네요.
A : “야당은 ‘과격’, ‘과도’, ‘과신’을 경계하면 됩니다. 과격하고 과도한 정치 공세를 자제하고. 수적 우위를 너무 과신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꼭 대통령만 만날 거 있나요. 총리도 만나고 장관도 만나고 여당 지도부도 만나고 전방위로 만나서 풀 생각을 해야죠.”
Q : 여당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A : “여당은 전제를 달지 말고, 여유를 갖고, 꼭 무슨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이래야 만나고 저러면 안 만난다, 이런 전제를 깔면 일이 안 됩니다. 야당 못 만난 지 오래됐으니 요즘 애로사항이 뭔지 들어봅시다, 이래야죠. 여당 민심 야당 민심 따로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야당이 파악하는 민심은 어떤지 들어보고. 일단 룸, 공간을 만들어줘야 돼요.”
“뉴라이트 본질은 ‘중도 실용’, 개인의 역사관이 문제”
Q : 윤 대통령 리더십이 지나치게 비타협적이란 지적도 많습니다. 너무 원칙만 내세운다는 거죠.
A : “검사 출신이니까 그런 점이 있죠. 하지만 윤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도 많아요. 그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비타협적인 검사 정신만 보이는 거죠. 검사는 좌우를 따지면 안 돼요. 옳고 그름을 놓고 이야기하고 풀어 가야지, 머릿속에 좌우 이런 이념의 편향성을 가지면 안 됩니다.”
Q : 요즘 오히려 이념 편향 논란이 많아졌습니다. 뉴라이트나 건국절 논란이 대표적이고요.
A : “뉴라이트라는 ‘신보수’를 뜻해요. 보수의 구태를 벗어나 좀 더 개혁적이고 발전적으로 나간다는 중도 지향적인 흐름이에요. 뉴라이트 자체가 나쁠 건 없어요. 다만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말을 극우적으로 해버리니까 문제예요. 뉴라이트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말할 때 공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Q : 이명박 정부 때도 뉴라이트 논란이 있지 않았나요?
A : “그때부터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나타났죠. 이명박 정부 노선이 중도 실용주의니까 거기에 합당하려면 올드라이트보다 뉴라이트가 맞아요. 그건 문제 될 게 없었죠.”
Q : 지금처럼 역사관에 매몰된 뉴라이트와 성격이 전혀 달랐군요.
A : “완전히 다르죠. 지금 뉴라이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개인의 역사관을 마치 뉴라이트의 입장인 것처럼 이야기해 버리니까 뉴라이트 자체가 완전히 편향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Q : 마지막으로 국민의 공감을 사는 국정 방향에 대해 조언 부탁합니다.
A : “국민 여론을 많이 들어야지요. 여론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지 말고 맞춰가야 합니다. 그리고 국정은 여야가 함께 하는 겁니다. 여야가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받들면 그게 올바른 국정의 방향이 됩니다. 개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 자기 가치관의 주입일 뿐이에요. 올바른 방향은 국민의 여론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디 자주 만나세요.”
※ 이재오
■ 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 15·16·17·18·19대 국회의원
■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
■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
■ 국민권익위원장
■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 민중당 사무총장
■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 송곡여고·대성고·장훈고 교사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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